정양환 문화부 기자
요리가 정치까지 주무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둘의 관계가 심상찮은 건 틀림없다. 노자(老子)가 그랬단다. “나라를 다스리는 건 생선을 요리하는 것과 같다”고. 갸우뚱. ‘깜냥’ 떨어지면 비린내가 난다는 뜻일까. 하여튼 국제정치에선 음식을 둘러싼 이런저런 후일담이 적잖이 쏟아진다.
차이쯔창(蔡子强) 홍콩중문대 교수가 쓴 ‘정치인의 식탁’(애플북스)이란 책을 보면 요리는 상당히 요긴한 정치 수단이 되기도 한다. 특히 격변의 20세기엔 이런 능력이 출중했던 이들이 많았다.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1882∼1945)와 소련 서기장 이오시프 스탈린(1879∼1953)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런 고수였던 루스벨트도 스탈린에겐 당한 적이 있다. 한반도도 무관치 않은 1945년 얄타회담 때였다.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의 수행비서 존 마틴에 따르면 캐비아와 버터, 감귤 등 귀하디귀한 음식이 “기관총이 불을 뿜듯” 쏟아져 나왔다. 당시 캐비아 최대 생산국이던 소련은 이를 전면 수출 금지시키고 자국에만 공급하던 시절이었다. 의도는 명확했다. “이 귀한 걸 우린 맘껏 즐긴다”는 과시와 “이리 풍족하니 아쉬울 게 없다”는 허세였다. 스탈린은 결과에 매우 만족하며 모스크바로 돌아갔단다.
그만한 역사적 방점을 찍은 건 아니겠지만, 요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방한 만찬에 오른 ‘독도새우’도 반향이 크다. 굳이 도화새우란 공식 명칭을 놔두고 독도새우라 부른 청와대 메시지는 자명하다. 문외한의 외국인도 “한국엔 독도란 맛난 새우가 나는 섬이 있나 보다”라며 고개를 끄덕였을지 모른다. 루스벨트와 스탈린처럼 정치인의 식탁은 한두 가지 포석만 염두에 두진 않는다.
이번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일본엔 ‘대사 각하의 요리사’란 만화가 있다. 주베트남 일본대사의 관저 셰프가 요리로 복잡한 외교관계의 실타래를 푸는 데 기여한다는 내용이다. 그중에 일본 매실장아찌와 베트남 메에(타마린드)를 절묘하게 배합해 양국 관계자의 입맛을 사로잡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청와대 만찬 주제도 ‘함께 갑시다(We go together)’였다. 만화에선 밥상머리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이를 하수(下手)로 본다. 일본은 남의 잔칫상 갖고 붉으락푸르락하기 전에, 뭘 해결하고 뭘 받아들여야 함께 갈 수 있는지 다시금 되돌아볼 때다.
정양환 문화부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