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이 만남보다 아름다울 수 있을까.
혹자는 말했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 누군가가 못 견딜 만큼 그리워진다면, 그것은 적어도 이별하지 않은 만남은 아닐 것이라고.
세상에는 묘비명만큼이나 많은 이별이 있다. 그중에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이별이란 것도 있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는 어떤 관계일까.
친구이기도 하고 칼을 든 원수이기도 하다.
그 애증은 일방통행일 수도 있고, 공기의 대류처럼 돌 수도 있다. 뿜어 낸 담배연기처럼 허공으로 흩어져버리는 때는, 참으로 허망하다.
여기 한 지휘자와 한 오케스트라가 있다. 이들은 4년을 함께 한 솥의 밥을 먹었고,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었고, 서로의 땀과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리고 이제 긴 이별을 앞두고 있다.
10월 28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성시연과 경기필하모닉의 연주회는 이별을 앞둔 이들이 차린 최후의 만찬과도 같았다.
베토벤의 9번 합창 교향곡이 울려 퍼질 연말의 송년음악회가 남아 있긴 하지만, 이날의 연주회가 이들의 진짜 ‘최후의 만찬’이라는 것은 음악 팬이라면 누구라도 눈치 채고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날의 레퍼토리가 ‘말러 9번’이었기 때문이다.
말러가 죽음을 앞두고 열병에 걸린 사람처럼 작곡했다는 9번 교향곡. 세상은 그의 마지막 교향곡을 두고 ‘세상과의 작별인사’라고 인식하고 있다.
성시연은 말러 9번 교향곡에 대해 ‘삶을 떠나보내는 고백’이라고 언급했다.
2부 말러 교향곡 9번을 지휘하기 위해 성시연이 포디엄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관객의 기침소리가 잦아들고 적막이 어둠처럼 배어들자 성시연이 지휘봉을 치켜들었다. 이윽고 알반 베르크의 표현처럼 ‘텅 빈 우주공간의 저편, 공기가 희박한 곳’과 같은 1악장이 연주되기 시작됐다.
말러가 어린 시절부터 수없이 듣고 보았다는 이글라우스의 춤판(2악장)을 지나 익살스러우면서도 폭주기관차처럼 질주하는 3악장.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4악장의 마지막 음이 끝나고, 환청 같은 잔향의 마지막 한 모금까지 사라져버리자 드디어 성시연이 지휘봉을 놓았다.
관객들의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려야 했다. 관객을 향해 돌아선 성시연은 웃고 있지 않았다.
그랬다. 3악장에서 보여준 성시연과 경기필의 집중력은 이들이 지난 4년간 어떻게 사랑하고 미워하고 투쟁해왔는지를 무서울 정도로 단숨에 드러냈다.
4악장은 과연 물결치는 이별다웠다. 벽처럼 굳건하던 성시연의 뒷모습이 일순 겹쳐 보이는 순간, 그의 지휘봉이 머뭇거리는 환영을 보았다.
각 파트의 솔로연주는 마치 ‘Lebe wohl(안녕히)’라고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정말로 긴, 끝이 없을 것 같던 영원의 피날레.
성시연은 등 너머로 울고 있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표정이, 그들이 쥔 악기, 부유하는 공기가 거울이 되어 그를 비추고 있었다.
‘말러 스페셜리스트’ 성시연과 경기필의 첫 만남도 말러였다. 2014년 경기필의 예술단장 겸 상임지휘자로 취임한 성시연은 첫 공식 연주회에서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을 연주했다. 2016년에는 경기필과 말러 교향곡 5번 음반을 내기도 했다.
말러는 성시연과 경기필을 이어주는 끈이자 숨이었다.
말러로 만나 말러로 헤어지는 이 멋진 이별을 향해 내 인생에서 가장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세상엔 만남보다 아름다운 이별이란 게 있구나.
이 엄청난 역사적 지점을 한 공간 안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숨이 넘어갈 듯 기뻤다.
성시연과 경기필의 ‘갈 길’에 부디 행운이 깃들기를.
Lebe wohl
Lebe wohl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