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기 위해 장어집을 운영했던 김종부 감독(가운데)은 어엿한 프로축구단의 수장으로 변신해 경남FC를 환골탈태 시켰다. 어려움과 실망이 가득했던 팀을 맡아 부침도 겪었지만 결국 클래식(1부리그) 승격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내며 탁월한 지도력을 과시했다. 사진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연봉 대폭 깎이고 물갈이 당하고
그야말로 애처로웠던 선수단
첫 시즌은 동기부여에 올인했죠
달라진 선수들과 말컹의 발견
클래식 승격, 장어의 꿈 이뤘다고요?
기쁨도 하루 뿐, 벌써 생존 고민
생계 위해 장어 굽던 그 시절처럼…
도민구단 경남FC는 ‘KEB하나은행 K리그 챌린지(2부리그) 2017’에서 일찌감치 정상에 올랐다. 창단 첫 우승의 기쁨도 컸지만 클래식(1부리그)에 3년 만에 복귀해 최고의 팀과 다시 경쟁하게 됐다는 사실은 더욱 의미가 크다. 부임 2년차 김종부(52) 감독이 경남을 춤추게 했다. 몇 년 전만 해도 먹고살기 위해 장어집을 열고 매운 연기를 마셔가며 눈물겹게 장어를 굽던 장어집 사장에게 찾아온 놀라운 인생 대반전 스토리다. 경남 함안에 있는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김 감독의 입을 빌어 기적과 같은 2017시즌을 되돌아봤다.
아마추어에 오래 있었어요. 거제고∼동의대∼화성FC 등을 거쳤죠. 프로 지도자는 경남이 처음이었어요. 의욕? 자신? 솔직히 부담만 한 가득이었죠. 처음 이곳(경남)에 왔을 때는 막막합디다. 나도 양복차림과 숨이 턱턱 막히는 넥타이가 불편한 초짜였지만 우리 팀은 더했죠. 이해는 됐죠. 바닥을 쳤잖아요. 실업 수준으로 연봉을 줄이고, 고액연봉자들을 물갈이하면서 팀 사기가 말이 아니었어요. 딱 봐도 ‘어렵겠다’ 싶었죠.
단체 스포츠는 팀 정신이 가장 중요한데, 경남은 선수들부터 이기겠다는 의욕을 회복할 필요가 있었답니다. 애처로울 정도로 축 가라앉아있는데 어떤 것부터 손을 대야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언젠가 프로팀을 이끌겠다는 로망을 마음에 품었는데, 경남은 심각했어요. 후회한 건 아니었는데 감독인 나부터 혼란이 찾아온 거죠. 동기부여를 하고 의욕을 키워주는 데 첫 시즌을 보냈네요. 경기력이나 조직력을 다지는 건 다음 문제였죠. 그렇게 하나하나 채워나갔어요.
사진제공|경남FC
● 기적
최대한 디테일하게 선수들을 이해시키려 했어요. 강팀을 만났을 때, 약한 상대와 겨룰 때 어떻게 해야 하는 지 공유했죠. 우린 경기력 자체보다는 팀으로 승부해야 하잖아요. 또 투지도 빼놓을 수 없죠. 남들이 열 걸음을 달리면 우린 열두 걸음을 뛰는 것. 말이 쉽지, 체력이 갖춰지지 않으면 불가능한 겁니다. 먼저 생각하고 판단하라는 주문도 많이 했어요. 효율적인 플레이를 하자는 얘기죠. 질 경기 비기고, 비길 경기 이기고, 뒤지고 있다가 역전하고. 일단 자신감이 쌓이고 얼마간 궤도에 오르니까 선수들이 내려오길 싫어하더라고요. 끈질기게 경쟁자들이 추격해올 때도 선수들이 스스로 주문을 걸더라고요. ‘우린 틀림없이 이긴다!’
대신 훈련은 철저했어요. 빌드-업 방법부터 우리만의 컬러를 만들려 했죠. 단조롭지만 확실한 패턴, 측면 크로스→문전 앞 슛을 주요 루트로 삼았죠. 간결하고 혼란스럽지 않은 플레이가 성공한 거죠.
경남FC 말컹.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 말컹
가장 운이 좋았던 것이 말컹의 발견입니다. 아이러니한데 우리 선수층이 얇고, 예산이 부족하다보니 (몸값이 낮은) 말컹을 찾아낼 수 있었어요. 우리 말고도 여러 팀들이 말컹을 알고 있었다는데, 결론적으로 우리가 먼저 데려올 수 있었죠. 다른 팀들이 더 좋은 선수들을 찾는 틈을 이용해서요.
여름이적시장에서 여기저기 빅 클럽들로부터 오퍼가 많이 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남아줬잖아요. 솔직히 키우는 재미도 쏠쏠했죠. 농구 선수로 뛰다 축구한지 6년여 밖에 되지 않아서인지 스펀지처럼 모든 걸 빨아들이더라고요. 물론 힘들기도 했을 겁니다. 낯선 문화에 적응하고, K리그를 좀 알게 된 전반기 막판부터 집중적인 상대의 견제가 들어오고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어요. 당연히 우리 입장에선 좋을 수 없었어요. 전방의 고립현상이 심해지면서 화력도 뚝 떨어졌는데 다행히도 말컹 스스로 잘 이겨내더라고요.
득점왕 아무나 하나요? 과거 아드리아노(대전 시티즌)와 조나탄(대구FC·현 수원삼성)도 대단했는데, 출전 경기수가 상대적으로 많이 적었던 말컹의 집중력은 더 칭찬하고 싶네요.
이 이야기가 왜 안 나오나 했어요. 진심으로 먹고 살기 위해 2013년 11월쯤 수원에 작은 식당을 차렸어요. 바다 장어구이 전문점. 아마추어 팀 감독봉급 아시잖아요. 말 그대로 눈물 젖은 장어였어요. 그래도 뭔가 특징을 주려고 소스를 직접 만들었는데, 제가 생각해도 기가 막혀요. 대단한 레시피도 없는 데 어떻게 그런 맛이 나오는지 몰라요.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가장 미운 손님이 있었어요. 장어 가시를 전부 빼달라는 분. 그러면 직접 핀셋을 들고 하나하나 뽑는데 상상이 되세요? 그 많은 장어 가시를…. 되묻고 싶었어요. ‘갈치는 어떻게 요리해 드시냐’고.
1년쯤 직접 운영하며 장어손질과 굽는 데 익숙해질 즈음 경남의 콜이 왔죠. 지금은 누님과 매형이 운영하는데, 시즌이 끝나면 식당에 가서 장어를 구워야죠. 휴식기도 알차게 보내야죠. 자랑은 아닌데 저희가게 장어는 직접 통영에서 공수해온 겁니다. 싱싱한 자연산이라고요. 또 하나 장어구이 말고 누님이 손수 만드는 멍게비빔밥에 장어탕도 꼭 드셔야 합니다. 별미 중의 별미니까.
사진제공|경남FC
● 클래식
사실상 새 팀을 꾸려야 할 겁니다. 승격이 확정 되고나니 딱 하루 좋더라고요. 다음날 눈을 떠보니 다시 현실이 기다렸어요. 어디에서 또 말컹을 찾아낼까. 어디서 괜찮은 고참을 찾을까. 임대 선수들도 돌아가야 하는데. 어휴, 걱정이 앞서네요. 물론 생존해야죠. 첫 해가 가장 중요합니다. 살아남아야 내일을 기대할 수 있잖아요. 팀 컬러는 바뀌진 않을 겁니다. 많이 뛰고 봐야 해요. 믿을 구석은 피지컬인데. 검증된 선수들을 툭툭 데려오고, 여기에 맞는 전술과 전략을 마련하는 데 전념하면 더 없이 좋겠지만 구단 사정을 생각해야 하잖아요. 체력훈련, 각오해야죠. 동남아시아처럼 따스한 지역에서 부상 없이 체력을 키운 뒤 돌아와 실전감각을 조금씩 끌어올리는 2차 작업으로 새 시즌을 대비할 참이죠.
그래도 자신감이라는 소중한 자산을 얻었어요. 경쟁을 극복하고 리그를 우승한 선수들이 느낀 짜릿함은 앞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저 역시 그래요. “프로 감독의 계약기간은 무의미하다”는 전북 최강희 감독님의 말씀에 절대 동의해요. 다만 어렵게 기회를 얻었는데 금세 목이 달아나면 억울하잖아요. 이제야 털어놓지만 굉장히 힘들었어요. 스트레스는 풀리지 않고 감기는 달고 살고. 연패했을 때는 온 몸이 쑤시고 담이 오고, 몸살까지 오는데 죽다 살아난 적도 많아요. 우리들의 숙명이겠지만 내년에도 웃는 시간이 많았으면 해요. 그럴 수 있겠죠?
함안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