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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로 바꾸는일 없다”더니… “알아서 용퇴하라” 공개압박도

입력 | 2017-10-26 03:00:00

[등 떠밀리는 공공기관장]인사 태풍 몰아치는 공공기관




“임기가 남은 공공기관장을 강제로 바꿀 수는 없다.”(7월 19일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공공기관장도 철학이 맞아야 함께 갈 수 있다.”(9월 11일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문재인 정부의 공공기관장에 대한 생각이 출범 이후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여주는 장관들의 말이다. 정부는 출범 초 ‘낙하산 인사는 없다’는 방침을 내비쳤고, 과거처럼 기관장들에게 일괄적으로 사표를 제출받아 강제로 인사교체를 하진 않았다.

하지만 정부 출범 5개월이 지나면서 산업부와 문체부, 금융권 등에서 기관장 교체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기관장 교체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분야나 개별 기관·단체에 유무형의 압박을 가해 자진 사퇴를 이뤄내는 형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정부는 10월 국정감사 종료 이후 주요 기관장 교체 및 공석인 기관장의 임명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 공기업 34%가 ‘사장 공석’

공공기관장 물갈이 움직임이 가장 거센 부처로는 산업부가 꼽힌다. 동아일보가 25일 국내 공기업 35곳 전체의 기관장 임기를 조사한 결과 12곳(34.3%)이 기관장 사퇴 이후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 중 8곳이 산업부 산하 공기업이다.

산업부는 백 장관이 “철학이 맞는 공공기관장과 함께 가겠다”고 말한 지 이틀 만인 9월 13일 장재원 한국남동발전 사장, 윤종근 한국남부발전 사장, 정하황 한국서부발전 사장, 정창길 한국중부발전 사장 등 한국전력 발전자회사 사장 4명의 사직서를 받았다. 길게는 임기가 2년 이상 남아있던 기관장들이라 ‘일괄 사표를 받은 것’이란 이야기가 공공기관 사이에서 퍼졌다. 대한석탄공사, 한국디자인진흥원, 한국석유공사 등 3곳의 수장은 채용 비리가 적발된 뒤 사표를 제출한 상태다.

김인호 한국무역협회 회장은 임기 4개월을 남기고 전격 사퇴했다. 김 회장은 “새 정부의 사퇴 요구를 받았다”고 공개하면서 공공기관장 인사 외압 논란에 불을 붙였다.

전 정부에서 임명한 금융권 최고경영자(CEO)들도 시련의 계절을 맞고 있다. 김용환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금융감독원 채용 비리 의혹과 관련돼 이날 자택과 사무실에 대한 검찰 압수수색을 받았다. 감사원은 김 회장이 2015년 금감원에 “지인의 아들을 합격시켜 달라”는 취지의 인사 청탁을 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우리은행 역시 청탁을 받고 신입행원 16명을 특혜 채용했다는 의혹이 국정감사에서 제기됐다. 최근 금융권을 덮치고 있는 채용비리 문제가 전 정권 인사들을 정조준하면서 이들의 교체 가능성 또한 커지고 있다.

○ ‘적폐 청산’ 대상으로 내몰리기도

문화예술 분야 공공기관에선 주로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나 국정 교과서 논란 등과 관련돼 기관장 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문화예술위원회와 영화진흥위원회는 박명진 전 위원장과 김세훈 전 위원장이 5월 사퇴했다. 현재까지 신임 위원장이 임명되지 않아 5개월째 공석이다. 콘텐츠진흥원은 송성각 전 원장이 최순실 국정 농단에 연루된 사실이 밝혀져 지난해 10월 물러난 이후 1년가량 수장자리가 빈 상태로 남아있다. 김정배 전 위원장이 사퇴한 국사편찬위원회는 6월 조광 신임 위원장으로 교체됐고, 이기동 전 원장이 물러난 한국학중앙연구원은 더불어민주당 윤리심판원장 등을 지낸 안병욱 가톨릭대 명예교수가 신임 원장으로 취임했다.

MBC 관리·감독 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의 고영주 이사장은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옛 야권 이사들이 고 이사장에 대한 불신임안을 다음 달 정기 이사회에 안건으로 제출했다. 고 이사장은 “여러 의견을 수렴해 자진 사퇴는 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추가로 문체부 산하 기관장들이 사퇴 의사를 밝힐 가능성도 적지 않다. 문체부의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 소속 조영선 변호사는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 관리에 책임이 있는 기관장이나 부서 책임자들은 스스로 용퇴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공개적으로 사퇴 압력을 넣기도 했다.

세종=박재명 jmpark@donga.com / 유원모·송충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