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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하던 정부… 美가 “FTA 폐기” 거칠게 밀어붙이자 물러서

입력 | 2017-10-08 03:00:00

美 거센 통상압박




냉랭한 한미 FTA 회의 4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부와 미국무역대표부(USTR)의 ‘제2차 한미 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에서 양국은 한미 FTA 개정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로써 한미 FTA는 발효 5년 만에 조문 일부가 수정될 것으로 보인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특유의 ‘미치광이 전략’이 결국 한국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 테이블로 끌어냈다. 한미 FTA 개정을 위한 미국의 전방위적 압박에 한국이 일단 한 걸음 물러선 모양새가 됐다. 개정 협상을 피할 수 없게 된 만큼 한국도 미국에 요구할 사항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7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미국 워싱턴에서 2차 한미 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를 개최하기로 4일(현지 시간) 합의했다. 이어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한미 FTA의 상호 호혜성을 강화하기 위해 FTA 개정 필요성에 인식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당초 한국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FTA 개정 또는 재협상 요구에 부정적이었다. 7월 한미 정상회담 직후 청와대는 “재협상에 합의한 바 없다”며 선을 긋기도 했다. 그 대신 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한 ‘FTA 시행 효과에 대한 공동 조사’가 우선이라는 주장을 유지했다. 8월 서울에서 열린 1차 공동위원회 특별회기에서도 이런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달 초 트럼프 대통령이 “(FTA 폐기를) 분명히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히며 공세를 강화하면서 한국 정부의 분위기는 달라졌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달 27일 미국 워싱턴에서 가진 한국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트럼프 정부의 한미 FTA 폐기 위협이 실질적이다. 미국이 한미 FTA 폐기 서한까지 준비했었다”고 공개한 것도 정부 입장 변화의 불가피성을 보여주기 위한 포석이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폐기’ 발언이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엄포가 아니라 진의로 확인되자 정부 내에서는 FTA 폐기는 막아야 한다는 기류가 형성됐다. 이후 한국이 먼저 2차 공동위원회 특별회기를 제안하고, FTA 개정에 나서게 됐다.

한미 두 나라가 FTA 개정에 나서기로 합의함에 따라 개정 대상 품목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미국의 최대 관심사는 지난해 232억 달러(약 26조7000억 원)에 이르는 무역적자 해소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기반인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지대)’를 고려해 철강, 자동차의 관세 등을 손질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산 쇠고기의 관세 철폐 시기 단축, 농산물 개방 확대 등도 협상 테이블에 올려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한국의 요구사항은 아직까지 뚜렷하지 않다. 정부나 업계 등이 한미 FTA 개정보다 현상 유지를 최우선으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개정 협상에 대한 대비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의 요구를 어느 정도 들어줄지 고민하면 불리해진다. 개정을 피할 수 없게 된 만큼 미국에 역제안할 다양한 카드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업부는 13일 예정된 국정감사에서 한미 FTA 개정을 위한 국회 보고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어 ‘통상조약의 체결절차 및 이행에 관한 법률’에 따라 △경제적 타당성 검토 △공청회 △통상조약 체결계획 수립 △국회 보고 등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미국 역시 의회 보고 등의 내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후 두 나라는 정식으로 개정 협상을 선언하게 된다.

김현종 본부장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다음 달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기간에 통상장관 회담을 열기로 했다. 이 자리에서 개정 협상 절차 등을 추가로 논의할 예정이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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