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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반전의 상징 ‘게르니카’를 둘러싼 비밀

입력 | 2017-09-16 03:00:00

◇암막의 게르니카/하라다 마하 지음·김완 옮김/444쪽·1만5000원·인디페이퍼




세로 3.5m, 가로 7.8m 크기의 캔버스 위에 펼쳐진 아비규환. 이리저리 도망치는 사람들, 소리 높여 우는 말, 경악해 돌아보는 황소, 쓰러진 병사를 무채색으로 그려낸 그림….

20세기 천재 화가 피카소의 ‘게르니카’(사진)는 세계인들에게 전쟁의 어리석음, 반전(反戰)의 심벌로 인식되는 작품이다. 스페인 내전으로 소도시 게르니카가 폭격당한 사실을 알게 된 피카소가 조국의 공화국을 지원하고자 붓을 들어 완성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반전의 심벌인 ‘게르니카’를 둘러싼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현실과 허구를 오가며 흥미를 돋운다. 소설은 2003년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9·11테러 보복 명분으로 이라크 공습 개시를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출발했다. 뉴욕 유엔본부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은 전 세계로 생중계됐는데, 당시 유엔본부에 내걸린 게르니카의 태피스트리(명화를 천에 복제해 그린 것)가 암막에 가려져 있었다. 반전의 상징인 게르니카 앞에서 이라크 공습을 알리는 아이러니를 막기 위한 선택이었을 터. 실제 뉴욕현대미술관(MOMA) 큐레이터 출신인 저자는 뉴스에서 이 장면을 본 뒤 소설을 구상하게 됐다.

이 장면은 소설의 중요 모티브다. 주인공은 피카소 전문가로 통하는 MOMA의 큐레이터 요코. 그는 누군가의 음모로 인해 유엔본부 게르니카 태피스트리의 암막 사건 용의자로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다. 요코를 누구보다 아껴 온 MOMA의 이사장 루스 록펠러는 누명을 씌운 세력에 분노하며 요코에게 스페인으로 가서 진짜 게르니카를 가져오라고 한다. 게르니카를 찾아 나선 요코, 게르니카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누가 게르니카 태피스트리를 훔쳤을까. 소설은 두 개의 전혀 다른 시대, 다른 인물들이 교차하며 전개된다. 큐레이터 요코의 이야기와 번갈아가며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작업하던 1937년의 파리를 그의 연인 도라 마르의 시선으로 보여주며 독자의 상상력에 힘을 불어넣는다. 사진작가였던 도라는 실제로 피카소의 게르니카 작업 과정을 사진으로 남겼고, 게르니카 그림 속 흐느끼는 여인의 모델로도 유명하다. 두 개의 시간의 축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흡인력 있게 전개된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