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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무릎 꿇은 장애인 엄마, 정작 무릎 꿇을 사람 누군가

입력 | 2017-09-11 00:00:00


5일 서울 강서구 가양동 공진초 부지에 특수학교를 세우는 문제로 열린 주민 토론회에서 장애아를 둔 엄마 20여 명이 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무릎을 꿇었다. 먼저 무릎을 꿇은 장민희 씨를 비롯한 대부분이 자녀가 고학년이어서 학교가 생겨도 자녀를 보내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런 행동을 한 것은 다른 장애아라도 혜택을 입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져 나간 이 영상은 장애인 부모의 아픔과 함께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문턱에서 장애인학교 하나를 품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었다.

다운증후군 자폐 발달장애 등 지적장애인들이 가는 특수학교가 턱없이 부족하다. 1000만 도시 서울에서 특수학교는 29개에 불과하고 8개 자치구에는 학교가 아예 없다. 학생들은 불편한 몸으로 다른 구에 있는 학교로 하루 3, 4시간씩 원거리 통학을 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지역 주민들은 특수학교가 들어오면 집값 땅값이 떨어진다고 아우성이다. 교육부가 부산대 교육발전연구소에 의뢰해 전국 특수학교 지역을 전수 조사한 결과나 강남 밀알학교의 사례를 보면 이런 주장은 근거가 없다. 시설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우리 동네만은 안 된다는 님비(NIMBY·Not in My Back Yard)는 외국에서도 나타나지만 기피시설에 장애인 시설이나 임대주택이 포함되는 건 지극히 한국적 현상이다.

가양동 특수학교는 빙산의 일각이다. 서울 송파구 거여동의 한 버스회사는 재개발조합으로부터 차고지를 비우라는 압박에 시달리는 중이다. 같은 구 가락동에 지을 예정인 실버케어센터에 대한 지역 주민의 반대 민원은 450건을 넘어섰다. 자신이나 부모가 치매에 걸려도 이렇게 반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화장장, 납골당, 쓰레기처리장, 방사성폐기물처분장 등은 공동체의 존속과 번영을 위해 꼭 필요한 시설이다.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우리 동네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야말로 공동체를 좀먹는 지역이기주의이고 일상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다.

지역 주민의 이해가 엇갈리는 사안일수록 정치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치의 중요한 기능이 자원 배분이고 갈등 조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인들이 이런 역할을 제대로 하는지 의문이다. 허황된 공약이나 지역이기주의에 편승해 갈등을 부추기고 증폭시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기피시설일수록 초기 단계부터 지역 주민을 사업 주체로 참여시키고 편의시설을 늘리는 지원책으로 갈등을 해소하는 선제적 조치가 필요하다. 장애인 엄마가 무릎을 꿇는 영상을 보면서 정작 무릎 꿇을 사람이 누군지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