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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민 “틀 구상하고 얼개 짜고 소설, 프로그래밍과 비슷”

입력 | 2017-09-07 03:00:00

엔지니어에서 전업작가로 변신 정재민 첫 장편 ‘거미집…’ 내놔




소설가인 나는 얼굴에 심각한 화상을 입은 사회복지사 김정인을 우연히 만난 후 그의 사연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탄광촌에서 태어난 하얀 피부의 소녀 서희연은 집과 길은 물론이고 강물마저 시커먼 그곳을 떠나 새로운 미래를 그리지만 끔찍한 성폭행을 당하며 삶이 산산조각난다.

최근 출간된 장편소설 ‘거미집 짓기’(마음서재)는 두 개의 이야기가 2012년, 1963년이라는 다른 시간대를 배경으로 교차하며 전개된다. 전혀 달라 보이는 두 이야기는 어느 순간 한 지점에서 겹쳐지며 뜻밖의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 탄광촌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복지관 내부 등은 생동감 있게 그렸다. 단문으로 속도감 있게 써 내려간 글은 시선을 붙잡는다.

작가는 중편소설 ‘미스터리 존재 방식’으로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정재민 씨(41·사진). 대기업에서 9년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근무한 그는 안정된 직장을 포기하고 2014년 전업작가가 됐다. ‘거미집…’은 그가 내놓은 첫 번째 장편소설이다. 정 작가는 사실감 있는 작품을 쓰기 위해 탄광촌, 복지관 등을 직접 가보고 관련 자료들도 꼼꼼히 찾아봤다.

마지막에 드러나는 반전은 앞서 나온 내용을 다시 살펴보게 만든다. 작가는 촘촘하게 이야기 구조를 짠 후 곳곳에 실마리가 될 만한 장치를 숨겨 놓았다. 이를 되짚어 보는 건 작품이 선사하는 또 다른 매력이다.

정 작가는 “엔지니어로 일하며 프로그래밍 작업을 한 경험이 전체적인 틀을 구상하며 소설의 구조를 짜는 데 간접적으로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거미집…’은 추리소설인 동시에 기구한 개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작품이기도 하다. 어떤 부분에 방점을 찍을지는 독자의 몫이다. 작품을 이해하는 데 어떤 틀도 씌우지 않겠다는 의미로 ‘작가의 말’을 싣지 않았다. ‘소설의 소임은 거짓의 거미줄 사이에서 진실을 찾는 것이다’라는 유명 소설가 스티븐 킹의 말을 첫 장에 소개한 것은 추리를 해 나가는 데 일종의 단서가 될 수 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