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정책 어젠다 전환
○ 저출산 대신 가족행복 앞세워 정책 대전환
보건복지부는 민간 위주로 재편되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통해 저출산 대책을 전면 개편할 계획이다. 그 첫 단계가 새로운 저출산 대책의 철학을 담은 캐치프레이즈를 만드는 일이다. 강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운영지원팀장은 “20, 30대와 소통하는 창구를 만들어 이들의 의견을 캐치프레이즈에 담겠다”고 했다. 저출산 대책의 새로운 방향이 결정되면 연내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를 열어 향후 4년간의 세부 정책을 구체화한다는 방침이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젊은이에게는 출산율이 오르는 것과 나의 삶이 개선되는 것이 연결되지 않는다”며 “저출산 대책은 단순히 출산율을 높이는 데 목적을 두기보다 사회환경과 개인의 삶을 개선함으로써 자발적으로 출산을 유도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다만 이 부연구위원은 “자칫 ‘저출산’이란 용어를 정책에서 한꺼번에 빼버리면 저출산 극복을 정부가 포기했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는 만큼 정책 기조를 완만하게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기존의 저출산 대책, 왜 실패했나
저출산 대책 기조를 ‘가족행복 정책’으로 전환하는 데는 그동안의 저출산 대책이 사실상 실패했다는 위기의식이 반영돼 있다. 정부는 2006년 ‘1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06∼2010년)’을 시작으로 5년마다 저출산 대책을 내놓았다. 올해까지 12년간 저출산 대책에 쏟아부은 예산만 124조2000억 원에 이른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최근 논란이 된 교사 임용 절벽 사태는 수년 전부터 저출산으로 예견된 문제였다”며 “그럼에도 범정부 차원에서 저출산과 각종 사회 현안을 연결하는 종합 대책을 만들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 ‘가족행복 정책’엔 무엇을 담나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과 젊은 세대의 인식 변화 등 달라진 사회 패러다임에 맞춰 저출산 대책을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헬조선에서 아이에게 물려줄 희망이 없다”고 여기는 젊은 세대의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지금까지 정부는 출산율 제고에 매달려 임신 확산에만 주력했다. 지난해 12월 행정자치부는 지역별 가임기 여성 수를 표시한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제작했다가 맹비난을 받았다. 올해 2월에는 ‘저출산 문제의 원인은 여성의 고스펙’이라는 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가 논란이 됐다. 이강호 복지부 인구아동정책관은 “젊은 세대의 출산 인식이 달라진 만큼 이에 맞게 저출산 정책을 재설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