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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AI업체 인수 막판 결렬… 4차 산업혁명 진출도 뒤처져

입력 | 2017-09-02 03:00:00

윤부근 삼성전자 대표 ‘작심발언’ 배경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실형 선고 이후로도 침묵을 지키던 삼성이 윤부근 삼성전자 대표이사의 입을 통해 어려움을 호소하고 나선 것은 현장의 절박한 위기감 때문이다.

윤 대표는 “외부에선 별것 아닌 거 같다고 하지만 우리는 참담할 정도로 애로사항을 느끼고 있다”며 “배에 타고 있는 사람(삼성 임직원)과 배를 보고 있는 사람(여론)의 시각차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서 마음 아프고 두렵다”고 말했다.

당초 내부에서는 간담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부회장 구속 관련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맞느냐를 두고 고민이 이어졌다고 한다. 신제품 및 사업 전략을 이야기해야 하는 자리에서 이 부회장의 부재를 언급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반론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삼성전자 대표이사이자 등기이사 중 한 명으로, 지난해 이 부회장의 이사회 데뷔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 온 윤 대표가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하자는 쪽으로 논의가 모아졌다.

간담회에는 TV 사업을 맡고 있는 김현석 사장과 스마트폰 사업을 총괄하는 고동진 사장, 생활가전 사업 담당 서병삼 부사장이 모두 참석해 삼성전자 세트 부문 사장단 전체의 위기의식을 반영했다.

윤 대표가 말한 어려움은 사업구조 재편 중단, 대형 인수합병(M&A) 무산, 적기 투자 실패 등이다.

윤 대표는 삼성전자가 올해 2분기(4∼6월)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지 않았냐는 일부 주장을 의식한 듯 “정보기술(IT) 업계에선 ‘졸면 죽는다’는 말을 많이 한다. 노키아를 비롯해서 원래 잘되던 회사가 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지금이야 반도체 사업이 워낙 잘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불안 요소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를 빼면 스마트폰이 중국 시장에서 9위로 추락하고 초고화질 TV 시장 점유율도 2014년 30%대에서 지난해 5.7%로 떨어지는 등 고전하고 있다.

삼성전자 안팎에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앞두고 미국 경쟁사들에 비해 뒤처지고 있다는 우려도 많다. 이날 삼성전자는 첫 클라우드 솔루션(여러 곳에 존재하는 데이터와 운영시스템 등 컴퓨팅 자원을 통합하는 서비스)을 12월 미국에서 공개하겠다고 밝혔지만 고전이 예상된다. 이미 시장은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MS), IBM, 구글 등 미국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4강 체제를 구축한 지 오래다.

삼성전자는 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정부로부터 자율주행 자동차 시험운행도 승인 받았다. 하지만 운전자가 아예 탑승하지 않는 5단계 자율주행에도 성공한 것으로 알려진 구글 등 경쟁사에 비해선 뒤져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 대표는 이 부회장이 부재 중인 현 상황에서 제대로 된 미래 준비가 어렵다고 했다. “(이 부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세상의 리더를 만나고 그걸 통해 얻은 인사이트로 미래를 만들어 가야 하는데 그걸 하나도 못 하지 않나. 집 안에 딱 틀어박혀 있다고 생각하면 의사결정이 안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최근 인공지능(AI) 전문기업 인수가 거의 막판까지 갔다가 무산된 것도 제때 의사결정을 할 수 없어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윤 대표는 1심 선고를 앞둔 지난달 23일 이 부회장을 만난 사실도 공개했다. 그는 “이 부회장이 비즈니스와 관련해선 글로벌 1등을 놓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것은 말 못 하지만 사업에 대해선 참 답답하다”고 말하며 목이 메기도 했다.

김지현 jhk85@donga.com / 베를린=김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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