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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고조선 청동투겁창, 러시아 연해주서 첫 발견

입력 | 2017-08-16 03:00:00

발해와 옥저의 땅, 연해주를 가다
<하> 러시아 옥저 유적
옥저에서 처음 발견된 청동투겁창… 기원전 4세기 고조선 유물로 추정
모피 무역 중심지였던 고조선… 연해주와의 교역 보여주는 증거
고립된 부족국가로 알려졌던 옥저… 부여와 교류한 개방 사회였음을 확인




러시아 연해주 아누치노 지역의 옥저 유적에서 발견된 고조선 청동투겁창. 길이 21㎝, 최대 폭 3.9㎝로 한반도에서 출토된 청동투겁창보다 큰 편이다. 강인욱 교수 제공

기원전 4∼3세기 고조선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투겁창(銅모·동모)이 러시아 연해주의 옥저 유적에서 처음 발견됐다. 옥저가 모피 등을 매개로 요동지역의 고조선과 원거리 교역을 한 사실을 보여주는 유물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일(현지 시간) 동아일보와 강인욱 경희대 교수(북방 고고학), 국립문화재연구소로 구성된 취재팀은 연해주 아누치노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투겁창 1점을 현지에서 확인했다. 해당 유물은 한 러시아 주민에 의해 기원전 4∼1세기 크로우놉카(옥저) 문화층에서 발견됐다.

길이 21cm, 폭 3.9cm의 청동투겁창은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해 날 끝이 여전히 날카로웠다. 특히 숫돌로 등날을 갈아 움푹 파인 흔적이 투겁창 표면에 남아 있었다. 등날을 간 흔적이 많지 않은 걸 감안할 때 몇 번만 사용한 뒤 무덤에 매장한 것으로 보인다. 강 교수는 “자루를 투겁창에 고정하기 위해 등날에 구멍을 뚫었는데 이는 중국 지린(吉林) 지역 청동기에서 흔히 발견되는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강 교수는 투겁창의 형태가 위아래로 가늘게 떨어지고 한반도 출토품보다 대형인 점 등이 후기 고조선의 세형동검 양식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는 “새로 발견된 유물은 요동 지역의 후기 고조선 문화가 지린성 중부를 거쳐 연해주로 유입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고조선 청동투겁창의 역사적 맥락과 관련해 강 교수는 고조선이 압록강 일대와 중원을 잇는 모피무역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동물 뼈와 고대 화폐 명도전의 출토지역을 감안할 때 고조선은 압록강 중상류 일대에서 모피를 생산해 중원에 판매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발견된 유물은 고조선의 원거리 모피무역 루트에 옥저도 포함됐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옥저가 자리 잡은 연해주는 예부터 모피와 약초 산지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연해주 콕샤롭카 유적에서 발견된 대형 건물터도 발해가 토착민들로부터 모피나 약초를 얻기 위해 세운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연해주 니콜라옙카 성터에서 발견된 기원전 4∼3세기 부여계 안테나식(촉각식) 동검(銅劍)이 주목된다. 당시 이 동검은 비슷한 시기에 통용된 중국 위나라 화폐 ‘칠원일근’과 함께 발견됐다. 강 교수는 “고조선 청동투겁창과 부여 동검은 중원과 요동지역, 연해주로 이어지는 고대 모피무역 과정에서 옥저로 넘어온 유물로 추정된다”며 “옥저가 고립된 부족국가라기보다 멀리 고조선, 부여와 교류한 개방 사회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한편 연해주 미하일롭카 지역에서도 니콜라옙카 출토품과 비슷한 안테나식 동검이 출토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동검 근처에서는 중국 화폐인 반량전(半兩錢)과 오수전(五銖錢)도 발견됐다.

강 교수는 “연해주는 이미 기원전부터 옥저로 대표되는 한민족 고대사의 한 축을 이뤘다”며 “이후 발해가 연해주로 진출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아누치노=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