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규 시인은 1982년부터 14년 동안 ‘풍장’ 연작시 70편을 썼다.
‘바람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 다오.’
-황동규 시인의 ‘풍장1’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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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세상 뜨면 풍장 시켜 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놓고…’로 시작되는 이 시에서, 세속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데 유순해졌을 법한 40대를 읽기란 쉽지 않다. 시의 화자는 그만큼 죽음에 대해 초연하다.
‘풍장1’에 언급된 선유도의 초분(草墳) 공원. 선유도를 비롯한 고군산 군도 일대에선 풍장의 풍습이 있었다.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화자는 몸 누일 곳에 이르렀음을 깨닫는다. 죽은 뒤 살도 피도 말라가겠지만, 그때껏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 바람과 놀게 해 다오.’ 이 부분은 ‘죽음’도 ‘놀음’으로 승화하는 시인의 명랑함이 빛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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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