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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보고 ‘아우라 있는 무용수’래요”

입력 | 2017-07-10 03:00:00

핀란드 국립발레단 유일한 동양인 수석무용수 하은지 씨
독일서 활동했던 강수진씨 이후 처음으로 해외발레단 종신단원
“키 작지만 무대선 가장 커보이게”




핀란드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하은지는 10년간 클래식 작품뿐 아니라 모던 발레까지 수많은 작품에서 주역으로 나섰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은지야. 빨리 무대로 가.”

2015년 3월 핀란드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하은지(33)는 객석에 앉아 있었다. 자신이 주역을 맡은 ‘돈키호테’의 공연. 이날은 다른 무용수가 주역으로 서는 날이었다.

공연이 10분쯤 지났을 때 주역 무용수가 갑작스럽게 부상을 당했다. 더 이상 공연 진행이 어려운 상황. 하은지를 발견한 발레단 단장이 다급하게 그를 불렀고 그는 곧바로 무대로 향했다. 급하게 옷을 갈아입고 분장을 했다. 한 번도 호흡을 맞춰본 적 없는 파트너와 함께 곧바로 무대에 나섰다. 공연은 성공적이었고, 핀란드 언론들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이날 상황을 뉴스로 전했다. 그가 얼마나 발레단의 신뢰를 받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는 핀란드 국립발레단 여성 수석무용수(에투알) 세 명 중 한 명이다. 이 발레단 최초의 한국인이자 현재 유일한 동양인 수석무용수. 2009년에는 43세까지 무용수 활동이 보장되는 종신단원이 됐다. 해외 발레단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무용수가 종신단원이 된 것은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활동했던 강수진 국립발레단장 이후 처음이다.

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하은지는 “제 키가 163cm로 발레단에서 제일 작다”며 “하지만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하자는 생각으로만 춤을 췄다”고 말했다.

그는 예원학교와 서울예고,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유니버설발레단에서 솔리스트로 활약한 ‘국내파’다. 유학 없이 해외 유명 발레단에 들어간 것은 그가 처음이다. 8년간 금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았던 뉴욕 국제발레콩쿠르에서 2007년 우승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등 많은 곳에서 입단 제의가 왔지만 바로 주역 활동이 가능했던 핀란드 국립발레단을 골랐다.

“그땐 주역으로 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 핀란드를 선택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안정적으로 마흔이 넘어서까지 무대에 설 수 있잖아요.”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4년 오른쪽 무릎 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입고 1년 6개월간 수술과 재활훈련에 매달렸다. 2010, 2012년 같은 부위의 부상으로 다시 수술대에 올랐다.

“수술 뒤 가장 두려운 것은 다시 무대에 설 수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죠. 종신단원이니 그냥 걸어 다니는 역할만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어요. 다른 무용수보다 약한 다리를 갖고 있으니 그만큼 더 운동하고, 더 연습을 해야 했어요.”

핀란드 주요 일간지인 ‘투룬사노마트’는 “하은지는 기술적으로 뛰어나며 감정이 깊은 아우라가 있는 무용수”라고 평가했다. 그가 신었던 토슈즈 등 관련 상품이 가장 빨리 팔릴 정도로 대중적 인기도 누리고 있다.

“앞으로도 지금까지 해왔듯이 열심히, 그리고 잘하고 싶어요. 물론 다치는 일은 더는 없었으면 좋겠어요.”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