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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 스님 “버리니까 행복”… 승려가 된 KAIST 과학도

입력 | 2017-06-08 03:00:00

‘20대 번뇌’ 책 엮은 도연 스님




현재 동국대 대학원에서 인도철학을 공부하는 도연 스님은 “20대는 수많은 포기를 경험하는 세대”라며 “다만 물질적인 것을 포기하며 정신적 행복을 느낄 수도 있으니 포기 자체로 좌절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불교에서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완벽하죠. 남과 비교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이런 마음을 젊은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책을 썼습니다.”

누구나 겪는 삶의 번뇌와 고통. 출가한 스님이라고 다를까. 특히 젊으면 젊을수록 일반 청년들과 비슷한 고통을 겪고, 힘들기도 마찬가지다. 조금 나은 점이 있다면 수행을 통해 이런 고통과 번뇌를 이겨나가는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점이겠다.

최근 ‘누구나 한 번은 집을 떠난다’를 펴낸 도연 스님(31)은 “학업을 병행하며 수행을 하다보니 요즘 20대 젊은이들의 아픔과 고민이 무엇인지 잘 알게 됐고, 그 과정에서의 깨달음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봉은사에서 어린이와 대학생의 지도법사를 담당하는 그가 자신과 자신이 본 젊은이들의 번뇌(煩惱)를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담은 책이다.


그가 책의 첫 번째 주제로 선보이는 청춘의 키워드는 ‘자존’이다. 수많은 청년들은 대학, 회사, 결혼 등 삶의 관문에서 남과 나를 비교하며 열등감을 가진다. 그는 책에서 “남과 비교하지 말아야 자존감이 생긴다”고 조언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공자님 말씀’이 아니다. 그의 ‘이력’을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 탓에 그의 목표는 언제나 공부해 출세하는 것이었다. 열심히 공부해 KAIST에 입학했지만 그는 과학고 졸업생, 월반해 조기 입학한 수재들과 공부하며 큰 벽을 절감했다고 한다. 좋은 곳에 가면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그 안에서의 또 다른 비교가 그를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행복하지 않다”며 입학 1년 만인 2006년 출가를 결심했다.

스무 살 청춘의 출가는 그야말로 고행이었다. 탁발(집집마다 다니며 걸식하는 수행)하며 무시당할 땐 ‘나 KAIST 다니는데’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올라와 그를 괴롭혔다. 이 책은 그렇게 하나하나 아픔을 느끼고 이겨낸 ‘상처 뒤의 딱지, 그리고 새 살’ 같은 기록이다.

그는 10년간 탁발 수행과 학업을 병행하며 2015년 대학(기술경영전공)을 마쳤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내가 아무리 무언가를 이뤄도 남과 비교하는 이상 행복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했다.

그의 책엔 여느 자기계발서처럼 듣기 좋은 말만 담겨 있지 않다. “세상이 정한 길과 반대의 길을 가거나, 남들에 비해 조금 느리거나 밀려나도 그것이 불행한 것은 아니다”라고 하면서도 자신의 결정은 반드시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따끔하게 꼬집는다.

“어디에도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정답은 없어요. 하지만 적지 않은 청년들이 마음대로 살며 갑자기 ‘방황’이 찾아왔다고 푸념하죠. 놀고 먹고 자며 좋은 사람과 인연이 되고 행복해지길 바라는 건 자유가 아닙니다. 방황하지 말고 계율, 율법, 규율을 줄 수 있는 스승이나 멘토를 찾거나 공동체에 들어가세요. 아무 데로나 흐르는 마음을 다잡아야 지혜가 생깁니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