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국민의 탄생/이경숙 지음/452쪽·2만5000원·푸른역사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학교 교문 앞에서 한 어머니가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시험은 평생의 좌표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수단이다. 동아일보DB
저자는 일제강점기 교육과 시험 제도를 사회사 관점에서 집중 연구해온 학자다. 책은 대학입시와 국가고시 등 각종 시험 제도가 극심한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에 주목한다. 능력에 따라 보상하는 게 정의라는 능력주의(meritocracy) 사회에서 시험은 마치 일상의 공기처럼 당연한 걸로 여겨진다. 저자가 상세히 설명하는 중국 수나라 이래 1000년 넘게 이어진 과거제 역사는 시험의 뿌리 깊은 연원을 보여준다.
그러나 철학자 존 롤스가 주장한 것처럼 현실적으로 모든 인간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능력주의의 함정이다. 실제로 이른바 ‘강남 3구’ 출신의 명문대 및 로스쿨 입학 비율이 압도적이라는 사실은 이제 뉴스도 아니다. 최근 학생부종합전형이 사실상 고교등급제를 전제하고 있다는 지적도 비슷한 맥락이다.
시험 지상주의는 지배층의 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악용돼 민주주의에 역행할 수 있다는 지적도 눈여겨볼 만하다. 예컨대 과거제도는 군신유의(君臣有義)의 성리학 지배질서를 사회적으로 확대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중국에 과거제를 뿌리내린 당 태종이 “천하의 영재가 모두 내 올가미에 걸려들었다”고 큰소리를 친 이유다.
일본 제국주의도 제국대학과 각종 전문학교 입학시험을 식민주의에 적극 활용했다. 1934년 경성제국대 예과 입시에서 수학, 영어 과목은 200점 만점이었던 데 비해 일본어는 무려 600점이나 배점됐다. 일본어보다 한국어 교육에 힘쓴 뜻있는 조선인들을 고등교육에서 배제하고 내선일체를 강요한 조치였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