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경제부 차장
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전국 4200만 명 유권자 앞에 배달될 ‘공약 청구서’를 감안하면 경제 공약에 대한 검증 작업을 소홀히 할 수 없다. 유력 후보들은 공약을 이행하는 데 필요한 비용으로 40조 원 안팎이 들 것으로 얘기하고 있다.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은 재정이 들어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기대수명을 어떻게 가정(假定)하느냐에 따라 연간 수조 원의 기초연금 예산이 늘기도 줄기도 한다.
돈 쓸 곳이 많아질 때 재원 마련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빚을 늘리거나 세금을 더 거두는 것이다. 씀씀이를 줄여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약속의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사실은 박근혜 정부의 ‘공약 가계부’로 확인됐다. 국가부채를 늘려 복지를 확대하는 건 그리스행 급행열차를 타는 일이다. 결국 방법은 증세(增稅)밖에 없지만 유력 후보들의 공약에서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말은 보이지 않는다. “득표 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아 포함하지 않았다”고 밝힌 일부 후보들이 있었지만 “청구서를 감추는 것 아니냐”고 비판하는 목소리는 듣기 어려웠다.
혹자는 “요즘 누가 성장률 몇 퍼센트 공약을 내놓느냐”고 말한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연 3% 성장률을 약속했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020년까지 국내총생산(GDP) 600조 엔 달성을 목표로 내걸었다. 변변한 성장 목표 하나 없이 추상적 슬로건만 내세우는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
달콤한 선심성 공약만으로 경제를 살릴 수 없다는 것은 누가 봐도 자명하다. 이제부터라도 연 40조 원짜리 공약 청구서를 내밀 새 대통령에게 ‘이 돈을 마련할 성장 해법은 무엇인가’라고 유권자들이 물어봐야 한다. 선진국이라고 비장의 무기가 있는 게 아니다. 과감한 규제 철폐, 고용을 유도할 합리적인 노동개혁, 적극적인 해외투자 유치 등 해답은 이미 나와 있다.
대통령의 5년 뒤 성공과 실패는 모두가 알고 있는 해법을 실천에 옮겼는지 여부가 판가름할 것이다. 분열된 나라를 통합하고 북한의 핵 위협으로 고조된 일촉즉발의 위기를 해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민들 피부에 와 닿는 가장 시급한 과제는 경제 살리기다. 만성 저성장 구조와 고용절벽의 위기를 깨고 활력이 넘치는 경제기반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내일 우리가 맞이할 새 대통령이 풀어야 할 숙제다.
이상훈 경제부 차장 janua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