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생활용품들이 허공으로 끌어올려지는 장면을 상상하다 보면 그런 데서도 역시 비누 같은 것이 하나쯤은 필요한 모양이라고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퇴직 공무원은 소년에게 말한다. “모든 피조물에게는 땅이든 하늘이든 물이든 자신만의 공간이 있다”면서 그 공간은 관습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성에 따라 결정할 수도 있는 거라고. 문득, 시도해 볼 수 있다면 나는 어떤 공간에서 잠시 살아보고 싶은가 하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물’이나 ‘바다’는 이렇게 말을 꺼내기에도 아직 큰 아픔이 남아 있으니 불가능하고, 어떤 환경운동가처럼 나무 위에서 지내보는 건 어떨까. 잠시 동안이라도 어디에 거주하든 비누나 치약은 있어야 할 것 같다. 현재 발을 꼭 붙이고 사는 관악구의 집 욕실에도 몇 개씩이나 여유분을 준비해두었듯.
이참에 비누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처음으로 찾아보았다. “때나 더러움을 씻어내는 데 쓰는 물건.” 같은 말은 석감(石검). 여기에 덧붙일 수 있는 설명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 누구나 쓸 수 있는 것, 색깔은 다양해도 거품만은 흰 것, 유용하고 향기로운 것, 만들 수 있는 것, 선물하기 좋은 것…. 이따금 값비싼 비누가 생기면 며칠 갖고 있다가 동생에게 주고는 한다. 비누라면 나한텐 이거면 되니까. 볼록한 유선형에 비둘기 로고가 새겨진 우윳빛 비누. 그게 유년 시절부터 다이알비누 살구비누 아이보리비누 등을 거치면서 찾은 취향이 되었다.
조경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