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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세 이후 인생 후반전, 배워야 행복해집니다”

입력 | 2017-04-24 03:00:00

11주 과정 ‘50플러스 인생학교’ 성황
어린시절 놀이로 나이 틀 깨며 인문학-영화 통해 스스로 성찰
준비 안된 은퇴 이후의 삶 설계… 재취업 돕는 컨설턴트 상주




18일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의 인생학교 학생들이 ‘예술로 풀어보는 자아 탐색 워크숍’에 참가해 다양한 몸짓과 연기를 시도하고 있다. 인생학교는 삶의 전환기를 맞은 50대에게 두 번째 배움의 기회를 제공해 인생 2막을 깨우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 제공

“어릴 때 다녔던 초등학교 지역별로 모이세요! 어릴 때 하던 놀이를 지금부터 똑같이 합니다.”

구민정 50플러스(+)인생학교 부학장의 외침에 머뭇머뭇하던 학생들이 가까이로 다가왔다. “저, 마포요” “저는 성북구”라고 말하며 어색해하던 학생들은 막상 어린 시절 놀이가 시작되자 과감해졌다. ‘땅따먹기’ 게임에 양복바지가 구겨지는데도 바닥을 기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할 때는 너무 열심히 달린 나머지 스타킹을 신은 여학생이 벌렁 넘어졌다. 웃는 모습은 영락없는 열 살이었다. 다만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머리숱이 줄었을 뿐이다.

18일 서울 마포구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에 모인 사람들은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는 만 50세 이상의 인생학교 수강자다. 서울 인구 중 50∼64세는 219만 명으로 전체의 21.9%를 차지한다. 조기퇴직 현실을 반영해 45∼49세까지 넣으면 총 305만 명으로 10명 중 3명꼴이다. 고선주 중부캠퍼스 관장은 “은퇴 전에 머릿속으로 각오했지만 막상 은퇴하고 나면 ‘어떻게 살지?’ ‘뭐 해 먹고 살지?’에 대한 준비가 안 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호모 헌드레드(평균수명 100세)’ 시대에 대비해 50세 이후 방향을 잡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두 번째 의무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들을 위해 2016년 5월 은평구 서부캠퍼스 개관에 이어 올해 3월 마포구 중부캠퍼스가 문을 열었다. 서울시는 2020년까지 총 6개의 서울시50플러스 캠퍼스를 개관해 운영할 예정이다. 인생재설계학부 15개 과정, 커리어모색학부 26개 과정, 일상기술학부 12개 과정이 있다.

50세 이상 학생들이 가장 먼저 접하는 교육은 인문학과 신화 영화 등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고 타인과의 관계를 배우는 것이다. 이날 연극수업 전 어린 시절 놀이를 다시 하는 것도 가벼운 ‘몸풀기’를 통해 어른의 모습을 잠시 벗기 위해서다. 구 부학장(한국교육연극학회 이사)은 “그동안 앉아서 머리만 쓰며 살던 사람들이 말타기 구슬치기 딱지치기를 하면서 몸과 생각을 유연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옆 교실에서는 영화 ‘건축학 개론’을 본 후 학생 20여 명이 감상을 발표했다. 정광필 학장이 “가장 생각나는 장면이 무엇이냐”고 묻자 학생 대부분은 여주인공 서연이 다른 남자 등에 업혀오는 모습을 보고 승민이 뒤돌아서는 장면을 꼽았다.

“젊을 때는 서툴고 무모하기도 했고 빨리 나이를 먹고 싶었고 나를 완성시키고 싶었다. 주인공 승민이는 배신감과 억울함, 내 감정을 알아주지 않은 상대방에 대한 원망, 자신의 소심함에 대한 화를 표현한 것이다.”

한 남성 참가자의 설명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생학교는 11주 과정이다. 참가비는 약 10만 원. 강좌 중에서 인기가 많은 건 ‘남자의 부엌’이다. 중년 남성들이 모여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만들기를 좋아하는 남성이 많아 목공교실은 언제나 수강자가 제일 빨리 찬다.

일자리를 직접 알선하지 않지만 재취업을 돕기 위한 정보기술(IT) 과정과 도시농업 과정, 시니어비즈니스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은퇴 전 했던 일과 연계해 할 수 있는 일을 상담해주는 전문 컨설턴트도 있다. 30년간 금융권에서 일하다 올해 초 퇴직한 한연숙 씨(55·여)는 “또래 사람들과 함께 캠퍼스에서 재밌게 어울리며 앞으로의 삶을 설계할 수 있어 유익하다”고 말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