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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스름돈은 카드에 쏙쏙… 동전없는 세상 시작됐네

입력 | 2017-04-20 03:00:00

20일부터 2만3050곳서 시범서비스





출근길 편의점에 들른 회사원 김모 씨는 1100원짜리 음료수를 골라 계산대 앞으로 갔다. 그는 1000원짜리 2장과 스마트폰을 점원에게 건네며 말했다. “잔돈은 여기 적립해 주세요.”

점원은 동전을 거슬러주는 대신 김 씨의 스마트폰에 있는 카드사 애플리케이션(앱) 바코드를 스캔했다. 곧바로 카드 포인트로 900원이 쌓였다. 동전 없이 현금 거래가 이뤄진 것이다. 김 씨는 “잔돈으로 받는 동전이 애물단지였는데 이제 이런 불편이 사라질 것 같다”고 말했다.

20일부터 김 씨처럼 동전 없이 거래하는 일이 현실이 된다. 이날부터 편의점, 대형마트에서 현금으로 물건을 산 뒤 거스름돈을 교통카드나 카드·유통회사 포인트 등으로 받을 수 있다. 일생생활에서 동전이 사라지는 ‘동전 없는 사회(coinless society)’가 첫발을 뗀 것이다.

○ “동전 충전해 주세요”

한국은행은 이런 내용으로 ‘동전 없는 사회’의 시범사업을 실시한다고 19일 밝혔다. 편의점 CU, 세븐일레븐, 위드미와 대형마트인 이마트, 롯데마트, 롯데백화점, 롯데슈퍼 등 전국에 있는 2만3050개 유통매장에서 시범사업이 이뤄진다.

이 매장에서는 현금 결제 때 돌려받는 동전을 교통카드나 카드·유통사 포인트 등으로 충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편의점 CU 매장에서는 잔돈을 교통카드인 ‘T머니’와 ‘캐시비’를 비롯해 하나카드와 신한카드의 멤버십 포인트로 적립할 수 있다. 이마트에서는 신세계 포인트 ‘SSG머니’를 활용해 거스름돈을 받을 수 있다. 현금 결제 때 본인이 갖고 있는 교통카드나 멤버십 포인트 앱 등을 보여주면 된다.

이렇게 적립한 잔돈은 각 가맹점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다. 일정 금액 이상이 쌓이면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현금으로 찾을 수도 있다.

한은이 이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동전 제조와 유통, 관리 등에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해마다 동전을 발행하는 데 600억 원가량이 든다. 하지만 동전을 서랍이나 저금통 등에 쌓아둔 채 쓰지 않는 사람이 많다. 지난해 한은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46.9%가 “잔돈으로 동전을 받아도 쓰지 않겠다”고 답했다. “갖고 다니기 불편하다”(62.7%)는 이유가 가장 컸다. 차현진 한은 금융결제국장은 “잔돈 적립에 쓰는 교통카드 등이 ‘동전 지갑’이 되는 셈”이라며 “사업이 활성화되면 동전이 서랍에서 잠자는 일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 “2020년까지 동전 없는 사회”


한은은 시범사업을 거쳐 2020년까지 동전 없는 사회를 구현할 방침이다. 우선 올 하반기(7∼12월) 대상 업종을 약국, 커피전문점 등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아울러 현금 계산 뒤 잔돈을 개인의 은행 계좌로 직접 송금하는 방안도 도입할 계획이다. 설문조사에서도 잔돈 적립 수단으로 계좌 입금(40.7%)을 선호하는 사람이 가장 많았다. 다만 이 방식이 현실화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종렬 한은 전자금융부장은 “계좌이체에 수수료 등 비용이 많이 들어 이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동전 없는 사회가 현실화되면서 대형 유통업체와 재래시장 같은 골목상권 간의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동전을 많이 이용하는 재래시장이나 노점상 등에 잔돈 적립을 위한 단말기를 설치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차 국장은 “골목상권에도 적용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요 선진국들은 한국보다 앞서 동전, 지폐 등 현금을 퇴출시키기 시작했다. 프랑스는 1000유로 이상일 때 현금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과태료를 물리고 있다. 스웨덴에선 소매점이 합법적으로 현금 결제를 거부할 수 있다. 북유럽 국가의 현금 결제 비중은 20% 안팎에 불과하다.

한국도 동전 없는 사회를 거쳐 ‘현금 없는 사회’로 진입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지난해 이용 건수 기준으로 신용카드 결제가 50.6%로 현금 결제(26.0%)를 크게 앞질렀다. 문종진 명지대 교수는 “현금 없는 사회가 되면 1500억 원가량의 화폐 발행 비용을 줄이고 뇌물 탈세 등을 없애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 효과가 있다. 다만, 경조사에 현금을 많이 쓰고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게 변화의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