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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변신한 송호근 교수 “과거 속에 현실 담았죠”

입력 | 2017-04-06 03:00:00

첫 장편소설 ‘강화도’ 출간 간담회




“논문에서는 인물들의 강약도 없고 그들의 고뇌도 보여줄 수 없거든요. 현실을 재구성한 소설을 통해 사람들의 가슴속을 파고들고 싶었습니다.”

국내 대표적인 사회학자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61)가 소설가로 데뷔했다. 그의 첫 장편소설인 ‘강화도’(나남출판)는 1876년 강화도조약 당시 조선 측 협상 대표로 나섰던 신헌(申櫶·1811∼1884)의 고뇌와 갈등을 통해 격동에 휩싸인 구한말을 조명했다.

송 교수는 5일 간담회에서 “유학자이자 무관, 외교관이었던 신헌은 개화파와도 폭넓게 교류했던 봉건과 근대 사이에 선 경계인”이라며 “협상 과정에서 일본으로부터 날아오는 화살을 쥐고 꺾어 조선의 심장에 깊이 박히지 않도록 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간담회 중 기자 출신의 김훈 작가를 언급했다. “이번 책을 쓰는 내내 김훈 작가를 의식하면서 썼습니다. ‘칼의 노래’ ‘남한산성’ ‘흑산’ 등 세 작품에 등장하는 이념의 부딪침, 척사와 개방, 천주교 박해까지 모두 이번 제 책에 담겼어요. 김 작가가 왜 이 소재를 놔뒀을까, 나 쓰라고 놔둔 것 같아 고맙더라고요.(웃음) 책 한 권 보내드리려 합니다.”

논문이 익숙한 사회학자가 왜 새삼 소설을 통해 옛 인물을 꺼내 들었을까. 그는 “학문을 하다 보면 답답함이 느껴질 때가 많았다”고 했다. 소설이 화제였지만 사회학자로서의 날카로운 그의 입담은 여전했다.

“안타깝게도 이 시대에는 신헌 같은 사람이 안 보입니다. 신헌이란 문무를 겸비한 유장(儒將)이 조선이 처한 국제적인 문제를 어떻게 풀어냈는지 기원을 더듬어보면 지금의 한국 상황에도 실마리가 생기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송 교수는 지난해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본격적으로 소설 집필에 나섰다. 농가에 들어가 하루에 10시간씩 소설에 매달려 2개월 만에 장편을 완성했다고 한다. “과거에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봉합된 채 흘러온 시간이 만들어내는 미래는 과연 어떨 것인가. 그것은 누추한 미래가 아닌가, 답답하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때 오랫동안 품고 있던 신헌이 떠올랐지요.”

그는 또 “차기 대통령에 근접해 있는 진보 쪽 대선 후보들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에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데 이는 지도자로서 결격 사유”라면서 “신헌의 이야기가 사드 배치를 둘러싼 현재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과 한국은 군사동맹이 아니라 일본을 상대로 한 ‘역사동맹’입니다. 21세기의 신헌이라면 ‘중국과 역사동맹을 유지할 수 있는 ‘역사적 사드’는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거예요. 이 답을 찾으면 군사동맹(미국·일본)과 역사동맹 사이의 균형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어렵지만 답을 찾아야죠.”

서울대와 미국 하버드대 출신인 송 교수는 본래 문학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서울대 사회학과 3학년이던 1977년 ‘김춘수 시론’으로 대학문학상에 응모했다가 떨어졌다고 한다. 당시 당선자가 정과리 연세대 국문과 교수다. 이후 송 교수는 1년간 절차탁마해 이듬해 ‘문학적 상상력의 사회적 구조’라는 평론으로 당선했다. 2013년에는 가왕(歌王) 조용필의 19집 앨범 수록곡인 ‘어느 날 귀로에서’를 작사하기도 했다.

소설의 흥행은 알 수 없지만, 송 교수의 말에서는 그의 오랜 꿈을 엿볼 수 있었다. “소설은 문사(文士)가 도전할 수 있는 가장 수준 높은 영역입니다. 이번 소설은 제겐 ‘응답하라 1977’쯤 되겠네요. 대학 시절 이후 40년 동안 가슴에 담아왔던 문학에 대한 꿈을 현실화한 것이니까요.”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