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은 자아를 실현하는 하나의 수행처 힘들고 불편하지만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할 때 자신이 성장하는 법 기능적 직장인이 아니라 마음 쓰고 수고하는 전인격적 직업인이 되어야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건명원 원장
큰 잔에 찻잎 몇 개를 떨어뜨리고 뜨거운 물을 부어서 가져가는데, 운동을 할 때는 벽 한쪽에 있는 테이블 위에다 올려놓는다. 그날도 그랬다. 운동을 하다가 목이 말라 찻잔이 놓여 있는 곳으로 갔는데 그 잔 위에 티슈 한 장이 올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보통 오전 8시 조금 지나면 여성 한 분이 와서 청소를 한다.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유리창을 닦고 운동기구의 먼지를 닦아낸다. 그분이 해 놓으셨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큰 감동을 받은 나는 그분에게 다가가 감사 인사를 드렸다. 청소할 때 생기는 먼지가 들어갈까 봐 명함 크기만 한 일회용 사각 종이컵을 걸쳐 놓고 거기에 티슈를 올려놓으신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지금까지도 마음이 밝고 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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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넓고 다양하다. 하지만 한 개인의 능력은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대개 하나의 역할만을 담당하고 산다. 세상 속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직(職)’이라고 한다. 또 인간은 누구나 행위의 결과에 따라 성숙해 간다. 당연히 모든 행위는 사실 수행이며 거기에 자신의 미래가 달려 있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업(業)’이라고 한다. 이렇게 보면, 인간은 ‘특정’한 역할(職)을 통해 자신을 실현하고 완성(業)한다. 이것이 바로 직업이다. 당연한 이치로, 인간은 ‘직업’을 잘 수행함으로써 사회적이고 공적인 존재로 확장한다. 바로 ‘직업인’이다.
여기서 핵심은 ‘업’의 정신에 있는데, 그것은 자신이 맡은 역할(職)을 전인격적인 태도로 대하느냐, 아니면 기능적으로 대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전인격적인 태도는, 마음은 다른 곳에 두고 하도록 정해진 것만 대충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맡은 일의 궁극적인 의미를 살펴서 거기에 온 마음을 두고 기꺼이 불편함과 수고를 받아들여 조그마한 확장성이나마 시도해 보는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우선 자신의 역할을 하나의 수행처로 삼아야 한다. 그 역할을 통해서 자아가 완성되고 실현된다는 지속적인 각성을 하고, 항상 정성스러운 마음가짐을 유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라도 마음이 떠난 상태에서 자신의 역할을 기능적으로만 대한다. ‘직’과 ‘업’이 분리된다. 이런 사람은 ‘직업인’이 아니라, 그냥 ‘직장인’이다. 한 사회의 건강성과 진보는 구성원들이 ‘직업인’으로 사느냐, ‘직장인’으로 사느냐가 좌우한다. 결국 ‘시민이냐’, ‘아직 시민이 아니냐’다.
누구나 성장하는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은 ‘그 다음’에 대해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을 살아야만 한다. 자신이 맡은 기능적인 역할 ‘다음’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머물지 않고, 알고 있는 것 ‘다음’을 따라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넘어가려고 시도한다. 어떤 일을 하고 나서 바로 그 다음에 어떻게 혹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걱정한다. 그것은 청소하시는 그분이 다른 사람의 찻잔에 먼지가 들어갈까 봐 걱정하고, ‘다음’을 하는 수고를 기꺼이 한 일과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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