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기 국제부 차장
한국의 대선 날짜가 발표된 15일 유럽의 네덜란드에선 총선이 치러졌다. 인구 1700만 명의 ‘소국’이고, 다당제 국가라 평소 같으면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올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많다는 28개 정당이 후보를 냈다. 단독 집권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해 보통 석 달씩 걸리는 지루한 연립정부 구성 작업을 거쳐야 비로소 새 지도자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총선은 그 스케일과 무게감이 역대 선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유럽은 물론이고 전 세계가 네덜란드 총선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해 6월 영국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 가결과 다섯 달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의 원동력이었던 극우 포퓰리즘 물결이 유럽 대륙을 휩쓸고 있기 때문이다.
포퓰리즘은 주어진 토양보다는 탁월한 선동가에 의해 그 위력이 커진다. 브렉시트 투표 땐 반(反)이민·반(反)EU 성향의 나이절 패라지 영국 독립당 전 대표가, 미 대선에선 ‘미국 우선주의’와 막말로 무장한 트럼프가 그 역할을 담당했다.
네덜란드는 원래 유럽에서 포용적인 국가에 속했다. 다문화와 다원주의를 존중해 이민자 배척도 상대적으로 적었고, 마리화나 흡연과 안락사를 허용한 나라였다. 경제 상황도 그리 나쁘지 않다. 지난해 2.1%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실업률은 5년래 최저치다.
이런 네덜란드 토양에 극우 포퓰리즘을 불어넣은 주인공은 ‘네덜란드 트럼프’로 불리는 극우 자유당 헤이르트 빌더르스 대표다. 그는 트럼프처럼 트위터 정치로 지지층에 반이민·반이슬람·반EU·반세계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주입한다. 국경 봉쇄, 모스크 폐쇄, EU 탈퇴 국민투표 실시 같은 공약은 극우 성향이 물씬 풍긴다. 또한 연금 수령 개시 연령 65세로 인하, 건강보험료 감액, 노인수당 증액 공약에선 대중에게 영합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번 총선에서 집권당과 1당 자리를 놓고 다툰 빌더르스의 자유당(16일 나온 출구조사 결과는 2위)은 채 20%도 되지 않은 지지율에도 네덜란드와 유럽 각국의 정치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극우 포퓰리즘의 인기에 놀란 나머지 유력 주자들이 득표를 위해 이민자와 난민 문제에 강경한 태도로 돌아선 것이다. 네덜란드 집권당이 총선 직전 반이민 목소리를 냈고, 100만 난민을 포용했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부적격 난민의 신속 추방을 발표했다.
성동기 국제부 차장 esp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