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패션브랜드 ‘구호’ 김현정 수석디자이너
김현정 수석디자이너는 지금까지 언론에 거의 노출된 적이 없다. 그는 명성 대신 ‘익명성’을 즐겨 왔다. 김 씨는 “많은 디자이너들이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 하지만, 나는 그냥 디자인에만 몰두할 수 있는 울타리 안에 존재하는 것이 더 좋다”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국내 대표적인 여성 브랜드의 하나인 ‘구호’는 정구호 패션디자이너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1997년 시작했다. 정 디자이너는 2013년 구호를 떠났다. 위기에 몰렸던 구호지만 현재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그가 떠나기 전보다 매출은 2배 정도 늘었고, 지난해 미국 뉴욕까지 진출했다. 국내에서 디자이너의 이름을 딴 브랜드가 디자이너가 떠난 뒤 살아남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
4년 전부터 이 브랜드를 이끌고 있는 사람은 삼성물산 패션부문 구호 디자인실의 김현정 수석디자이너(43). 2000년 구호에 입사해 18년째 이 브랜드와 성장해 왔다. 17일 서울 용산구의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브랜드 구호의 특징은 장식을 최대한 배제한 디자인의 ‘미니멀리즘’이다. 몇 년 전부터 국내에 불어닥친 미니멀라이프와 잘 맞아떨어진다. 그는 “디자인에서 미니멀을 추구하다 보니 제 삶도 언제부터인가 단순해졌다”라며 “집에 가구 등 갖춘 것은 많지 않다”고 했다.
최근 미국 뉴욕에서 개최한 구호의 올 가을·겨울 프레젠테이션. 삼성물산 제공
“지금의 고객층도 좋지만 신규 고객을 꾸준히 발굴해서 파이를 키워야만 해요. 20대가 40대가 돼도 라이프스타일만 같고, 체형이 변하지 않는 한 취향은 잘 바뀌지 않거든요. 계속 젊은 고객을 불러들이기 위해 조금 더 젊고, 여성다운 느낌을 가미하려고 해요.”
올해 봄여름 컬렉션은 아직 매장에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벌써부터 올 가을·겨울 상품 품평회를 열고, 내년 봄·여름 상품 준비를 하고 있다.
가장 보람된 순간을 말해 달라고 하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속물적인 디자이너인지 모르겠지만 판매율이 높아 재주문이 들어오면 기분이 좋아져요. 최근 미국 뉴욕에서 연 프레젠테이션 뒤 한 미국 백화점에서 독점 판매 제의를 들었을 때 쾌감이 느껴지더군요.”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