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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유착 한국에 토대 둔 글로벌 삼성의 딜레마”

입력 | 2017-02-22 03:00:00

외신이 본 이재용 부회장 구속




이재용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 이후 미국과 영국, 일본 등 해외 유력 매체들이 연일 이번 사태를 분석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외국 기자들의 눈에 비친 이번 사태의 본질은 ‘한국 땅에 토대를 둔 글로벌 기업 삼성의 딜레마’였다.

이 부회장 본인은 해외에서 영어 이름 ‘Jay’로 불리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공부를 한 ‘서양화된(westernized)’ 인물이지만, 결국 ‘삼성’이란 한국식 재벌 체제에 적응해야 했다는 분석이다.

20일(현지 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부회장 주변 인물 인터뷰를 통해 “그는 (부친보다) 더 국제적인 시각을 갖고 서양식 경영을 선호했으며, 토론과 창의성을 중시했다”고 분석했다. “2014년 아버지 부재 속에 삼성 총수 자리를 물려받은 이 부회장이 미국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회사 재편에 나서며 불투명한 기업 문화와 정경유착으로 얼룩진 나라에서 투명성과 신뢰성의 시대를 약속했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이 주변 사람들에게 “재벌 체제는 끝났다”고 말했다는 사실도 전했다.

신문은 동시에 “이재용 부회장을 잘 아는 사람들은 이 부회장이 새로운 변화에 대한 욕구와 오랜 비즈니스 관행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 부회장의 지인으로 기사에 소개된 박윤식 미국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WSJ와의 인터뷰에서 “이 부회장은 굉장히 서양화된 사업가지만, 한국적인 경제·정치·사업 환경 속에서 경영했다”고 말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도 전날 사설을 통해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FT는 “영어 이름 ‘Jay’를 쓰는 이 부회장은 주주 배당 확대와 해외 기업 인수 등 다소 공격적으로 보일 수 있는 기업 개혁 방향을 설정해 놨다”고 분석했다.

FT는 이 같은 변화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한국에서는 이 부회장 구속 수사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무조건 관용을 베풀기보다는 법정에서 공정하고 엄격한 절차를 밟는 게 중요하다”며 “이 부회장이 유죄로 판명난다면 죗값을 치러야겠지만, 무죄라면 더 이상 정치적 희생양으로 만들어선 안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식 재벌 체제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재벌이 한국 경제에 확고히 자리 잡고 있으며, 10대 재벌의 연매출이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80%를 넘어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외신들은 한국 특유의 재벌 체제로 인해 이 부회장의 구속이 가져다줄 타격의 심각성도 지적했다. NYT는 “재벌 문화는 한국에서 종종 제정 군주제에 비유되는데, 회장이 기업에 대한 결정을 하거나 승인을 해야 한다. 따라서 실질적인 리더인 이 부회장의 부재는 일반적인 회사에서 최고 중역의 부재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고 분석했다.

일본 언론은 상대적으로 차분하게 이번 이슈를 들여다보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삼성의 최고 경영진이 구속된 것은 처음이며 재계를 중심으로 이번 특검 수사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산케이신문은 이 부회장의 구속이 일본 전자업체들에 좋은 기회라고 보도했다. 신문은 18일자에서 “이 부회장의 구속은 ‘갤럭시 노트7’ 배터리 발화 사고에 이어 기업 이미지를 크게 저하시키는 문제”라며 “소비자들의 ‘삼성 기피’가 가속화되면 일본 전자업체들엔 사업 기회가 늘어 스마트폰 및 TV의 세계 점유율을 늘릴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샘물 evey@donga.com·김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