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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박 대통령은 정말 피해자일지 모른다

입력 | 2017-01-23 03:00:00

1961년 피그스 만 침공 실패… 케네디의 향정신성 약물과잉 탓
무지막지한 청와대 약물 반입… 대통령의 심신상태와 관련 있나
성형수술이 문제가 아니다 최순실과 ‘주사 아줌마’ 대체 무슨 짓 했는지 밝혀야





김순덕 논설주간

 살아 있다면 올해 100세인 존 F 케네디는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강조한 대통령이었다. ‘미국 우선주의’ 도널드 트럼프와 정반대다. 케네디도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해결하기 1년 반 전 쿠바 피그스 만 침공 때는 처절하게 실패했다. 그 이유가 미국 최고 똑똑이들의 ‘집단사고’ 때문만이 아니라 향정신성 약물 남용 탓이라는 지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케네디가 평생 시달린 애디슨병이 바로 작년 12월 ‘최순실 국정 농단 청문회’에서 언급된 부신기능저하증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부신기능저하증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맞느냐.” 국민의당 김경진 의원의 질문에 김상만 전 대통령 자문의는 “말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맞을 공산이 크다고 나는 본다. ‘만성피로 해결사 부신을 고치자’라는 저서로, 태반주사 등을 이용한 부신기능 치료로 이름난 의사가 김상만이어서다.

 케네디는 젊고 건강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위해 병을 숨긴 채 개인 주치의로부터 향정신성 약물 치료를 받았다. 사람 심리는 비슷한지 마약류인 암페타민을 공급하는 뽕닥터(Dr. Feelgood)로부터 ‘비선 치료’까지 받았다. 1961년 피그스 만 작전과 소련 흐루쇼프와의 빈 정상회담을 망친 것도 이런 비정상적 약물 때문이라는 게 ‘광기의 리더십’을 쓴 미국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나시르 가에미의 분석이다. 

 “만약 대통령이 부신기능저하증에 걸려 있다면 의식이나 판단력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느냐.” 김 의원의 질문에 이병석 전 대통령 주치의는 “정도에 따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하고 말을 빙빙 돌렸다. 부신기능이 떨어지면 만성피로, 복통, 구토는 물론이고 잠을 자도 개운치 않고, 늘 불안하고, 뭘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증상 등이 나타난다. 김상만은 스트레스를 피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며 “충고만 하려는 사람처럼, 만나면 기분이 좋지 않은 사람과는 만남도 자제하라”고 TV프로에서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니 당연하다. 박 대통령은 대면보고나 정치인들과의 만남을 극도로 삼간 채 관저에서 ‘근무’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그래도 미국에는, 케네디에게는 ‘의료 쿠데타’라는 반전이 있었다. 1961년 가을 백악관 주치의인 해군제독 조지 버클리가 양식 있는 의사들과 손잡고 개인 주치의와 비선 의사를 몰아낸 것이다. 합리적 치료를 통해 몇 달 만에 대통령이 ‘엑설런트’ 상태로 바뀌면서 미국의 운명도 달라질 수 있었다고 역사학자 로버트 댈릭도 평가했다.

 이처럼 중요한 대통령의 진료 문제가 세월호 참사 전후의 성형수술 여부에만 쏠리는 것을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다. 나이를 먹어도 여자는 여자이고, 미를 추구하는 건 여자의 ‘사생활’이어서가 아니다. 휘트니 휴스턴 사망 시 체내에서 검출된 자낙스를 비롯해 ‘박근혜 청와대’에 들어간 향정신성의약품과 의료용 마약이 무려 3124정이고, 이 중 2504정이 사용된 사실이 드러났다. 박영수 특검은 “주치의 허가 없이 약물을 청와대 안으로 반입했다면 국가 안보를 해치는 내부의 간첩으로 볼 수 있다”고까지 했다. 그런데도 ‘의료 쿠데타’는커녕 향정신성 마약류 약품의 사용자 공개를 거부한 육군 중령인 청와대 의무실장을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박 대통령이 1일 자청한 기자간담회에서 “너무나 피곤하면 의료 거기서 알아서 처방하는 거지 거기에 무슨 약이 들어가는지 알 수는 없지 않으냐”며 “의료진에서 이상한 약, 그런 건 썼다고 생각 안 한다”고, 누가 묻지도 않은 답변을 한 것도 기이하다. 최순실이 주사 아줌마를 불러 피로해소 주사를 놓는다면서 육체적 정신적 의존성을 낳는 페치딘 같은 마약류를 섞었을지 알 수 없다는 의사들도 있다. 대통령이 늘 몽롱한 상태로 판단력이 떨어져 있어야 최순실 자신의 영향력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부신기능저하증이라면 진짜 부신기능이 떨어진 것인지, 이상한 약을 마구 투약했기 때문인지도 규명해야 할 일이다.

 그림 동화 ‘라푼젤’에는 마녀에 의해 탑 속에 갇혀 사는 소녀가 나온다. 상상력을 발휘하자면, 박 대통령은 믿었던 최순실에 의해 청와대 관저에 갇혀 산 피해자일지 모른다. 하긴 최순실 없는 지금도 별로 달라진 게 없는 대통령을 보면 진짜 피해자는 국민이라는 생각이 든다. 블랙리스트 같은 건 알지도 못한다니, 혹시 졸피뎀 영향에 자신이 한 일을 기억도 못하는 게 아닌지 궁금하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