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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화중유훈]생각을 멈추고 감정을 하늘에 맡기면 들리는 것이 있다

입력 | 2017-01-16 03:00:00

조선시대 허련의 ‘송하인물도’




 소나무 아래 홀로 앉은 인물의 꼿꼿한 모습을 보면 보는 이도 흠칫 등을 곧추세우고 마음마저 경건하게 다스리게 된다. 이러한 감상이 유익했던 것일까. 소나무 아래 한 인물이 의연하게 앉아 있는 그림은 중국의 송나라부터 조선시대 말기까지 꾸준히 제작됐다. 이러한 그림은 ‘청송(聽訟·소나무 소리를 듣다)’, 혹은 ‘청천(聽泉·물소리를 듣다)’으로 부르거나 ‘송하인물도(松下人物圖·소나무 아래의 인물)’라고 부르기도 한다.

 조선시대 허련(許鍊·1808∼1893)이 그린 송하인물도는 널리 알려진 그림은 아니지만 한 번쯤 감상해볼 만한 작품이다. 추가 김정희의 제자인 허련은 스승인 김정희와는 달리 그 당시 문사들이 요구하던 다양한 장르의 그림을 그렸다. 특히 상단에 적혀 있는 글은 ‘송하인물도’를 통해 그 시절 학자들이 느끼고자 했던 주제를 보여준다.



 맑은 물 굽이진데, 푸른 소나무 그늘.

 한 사람은 땔나무 지고, 한 사람은 금(琴) 을 듣는다.

 감정과 본성이 가는 곳은 오묘하여 찾을  수 없으리니.

 하늘에 맡겨두면 만나는 것이 맑은 희음 (希音)이라.



 희음이란 무엇인가. 희음이란 ‘드문 소리’다. 쉽게 들을 수 없는 소리다. 홀로 앉으면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생각이 많아지고 감정은 요동치기 마련이다. 그러나 호흡을 고르고 그 생각을 멈추고 그 감정을 하늘에 맡기면 희미하게 울리고 들리는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희음’이다.

  ‘큰 소리는 소리가 드물고, 큰 형상은 형체가 없다(大音希聲, 大象無形).’ 아주 큰 대상은 그 끝이 보이지 않으니 형상을 알 수 없고, 같은 방식으로 아주 큰 소리의 파장을 우리는 듣지 못한다. 쉽게 보고 듣는 것은 대개 누구나 보고 듣는 사소한 것들이다. 노자(老子)는 위 구절을 통해 우리의 좁아지는 시야에 주의를 요한다. 작은 것에 매달려 흔들리지 말고 묵직하고 도도하게 흘러가는 큰 흐름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희음을 어떻게 감지하나. 이 그림 속 선비처럼 소나무 아래 홀로 앉는 것일까. 그것이 정답일 리는 없다. 소나무 아래 홀로 앉은 이 선비의 그림은 성찰하고 통찰하는 안목을 넓게 키우고자 하는 노력을 표현한 상상이다. 이 그림은 바쁜 일상 속에 조급해진 마음을 잠시 멈추고 복잡한 감정을 하늘에 내려놓는 순간을 요구하는 성찰의 시간, 즉 성찰의 표상이다.

 조선시대 학자들에게 크게 인기를 누렸던 ‘시품(詩品)’은 우리 예술과 시문이 추구할 수 있는 24가지의 멋진 격조를 보여준다. 실제 저자는 수수께끼지만 시의 품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시품’의 18번째 품격 ‘실경(實境)’에도 노자의 희음이 등장한다. 시품이 바라보는 희음은 진실이다. 소나무 아래 정좌를 하고 우리를 지켜보는 저 학자는 우리에게 소나무 아래로 올 것을 요청하지 않는다. 그림 속 학자는 그저 잠시 생각을 멈추라고 가르친다. 쉴 틈 없이 돌아가는 계획과 계산들을 내려놓으면 들리고 보이는 것이 있다고 말이다.

고연희 서울대 연구교수 lotus126@daum.net
정리=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