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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함인희]타인을 배려하는 아이들을 보며

입력 | 2016-12-24 03:00:00

겉모습 각양각색 다섯 조카 손주, 서로의 다름을 자연스레 받아들여
내 편 네 편 가리는 어른들이 부끄러워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내겐 다섯 명의 조카 손주가 있다. 제일 큰조카가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두었고, 둘째 조카가 딸 하나 아들 둘을 낳은 덕분이다. 조카 손주들에겐 한국의 외할아버지께서 손수 지어주신 한국 이름이 있긴 하지만, 더 자주 불리는 이름은 루시와 엘리엇, 헨리와 에빈 그리고 올리버다. 조카 손주 중 제일 먼저 태어난 루시가 초등학교 2학년(아마도)이고, 막내인 올리버가 이제 한 돌이 지났다.

 초등학교부터 미국에서 다닌 조카들은 대학원 졸업 후 미국에서 취직을 했고, 큰조카는 유대인과, 둘째 조카는 백인과 결혼하면서 미국시민이 되었다. 큰조카는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에 등장했던 특유의 유대교식 결혼식을 올렸고, 작은 조카는 한국식 전통 혼례를 치른 다음 날 대학 교회에서 전형적인 미국식 결혼식을 올렸다.

 아이들이 하나둘 태어나면서 조카네 가족 안에도 흥미로운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연말에 떠오르는 재미난 기억 중 하나는 아빠가 유대인인 엘리엇에겐 크리스마스가 없다는 것이 아닌가. 우리에겐 다소 생소하지만, 유대교에선 예수를 수많은 선지자 중 한 사람으로 간주할 뿐, 인류를 구원하러 이 땅에 오신 메시아는 아니라고 믿기에, 예수의 탄생일인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이 이야길 듣고는 사촌언니 루시가 “엘리엇은 크리스마스가 없대요”라며 놀리곤 했다 한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선물을 못 받는 불쌍한(?) 엘리엇을 위해 자신이 받은 선물을 나누는 아량을 베풀었음은 물론이다.

 엘리엇의 동생으로 한국인 남자아이를 입양한 것도 일대 사건이었다. 한국 이름이 나루였던 녀석은 생후 15개월 즈음에 큰조카네 가족으로 입양되었다. 집안 어르신들께선 “낳으면 되지 왜 입양을 하느냐”고 걱정도 하고 만류도 했지만, 오래도록 생각하고 신중하게 결정을 내린 큰조카네 부부는 입양에 성공했고, 지금은 자연스러운 가족을 이루어가고 있다. 나루 대신 에빈이란 새로운 이름도 지어주었다.

 지지난해 여름, 나루를 미국으로 데려가기 위해 큰조카네 부부가 직접 한국을 방문했다. 이모할머니로서 처음 녀석을 만나던 날, 다른 조카 손주들과 달리 순수한(?) 한국인의 얼굴을 한 녀석에게 이상하리만치 친근함을 느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제 겨우 엄마 아빠 부를 만큼 말을 떼었는데 ‘녀석이 미국에 가면 또다시 낯선 언어와 생소한 환경에 적응하느라 고생이 많겠구나’ 하고 두루 마음이 쓰였으나 큰조카 부부가 매우 세심한 데까지 신경을 쓰고 있다는 이야길 전해 듣고 안심한 기억도 난다.

 조카 손주들은 겉모습도 각양각색이다. 엘리엇은 까만 단발머리에 동양인의 귀여움과 고집스러움이 매력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고, 루시는 금발에 커다란 눈망울과 오뚝한 코를 가진 예쁜 서양 인형을 꼭 빼닮았다. 남동생 헨리는 얼굴이 갸름한 데다 사색적인 모습이 일품이요, 막내 올리버는 두둑두둑한 얼굴이 예전 우량아 선발대회에 나온 모습과 볼수록 닮았다. 입양아인 에빈은 자그마한 키에 까만 눈망울에 사랑스러운 웃음을 담고 있고.

 정작 신기한 건 어린 손주 녀석들끼리는 서로의 차이와 다름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혼혈아인 손주들을 보며 다소의 이질감이나 거리감을 느끼는 건 어른들의 생각과 시선 속에 불필요한 고정관념과 근거 없는 편견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게다. 아이들끼리는 그저 나와 다르다고만 생각할 뿐, 이상하다거나 열등하다거나 틀리다거나 판단을 하지 않건만, 그저 못난 어른들이 내 편 네 편 가리고, 내 편은 옳고 네 편은 틀리고, 우리는 우월하고 너희는 열등하고 식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일 게다.

 어린 시절부터 서로의 다름과 눈에 띄는 차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다양한 문화가 섞이고 공존하는 가운데 풍성하고 다채로운 경험을 한 우리 손주 세대로부터, 나와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존중하고 얼마나 배려해야 하는지 배워야 할 것이 참으로 많을 것 같아, 슬며시 부끄러움이 고개를 든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