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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권유로 탈북 했다가…” 파리서 北 실상 증언한 탈북 여성

입력 | 2016-11-29 19:43:00


"부끄럽고 고통스러운 경험이지만 지금부터 들려드릴 이야기는 저뿐만 아니라 북한 사람들이 모두 겪는 일상입니다."

어렵게 말문을 연 탈북 여성 박지현 씨(48)가 탈북과 인신 매매, 노예노동, 출산, 북송(北送) 그리고 재탈북 후 영국에 정착하기까지 굴곡 많았던 과거를 풀어놓았다. 24일 프랑스 파리 13구 국립동양언어대학에서 열린 국제 북한인권 심포지엄 '북한 정권의 인권 기록'에 참석한 청중 150여명은 끝내 눈물을 보였다. 프랑스 싱크탱크인 아시아센터가 마련한 행사였다.



함경북도 청진에 살던 박 씨는 1998년 삼촌이 굶어죽은 모습을 보고 아버지의 권유로 탈북 했다. 중국으로 간 박 씨는 곧 5000 위안(약 85만원)에 북동쪽 시골로 팔려갔다. "중국인 남편은 도박만 하고 저는 노예처럼 농사를 지었죠. 돈도 없고 주민 감시도 심해 도망칠 수 없었어요. 그 사이 낳은 아들만 바라보고 버텼습니다."

그렇게 6년을 이름도 국적도 없이 지내던 그는 갑자기 들이닥친 공안(公安)에 끌려갔다. 며칠 동안 발가벗긴 채 중국 경찰 앞에서 앉았다, 일어났다 반복했다. 몸속에 넣어두는 돈을 노린 것이다. 북한 노동교화소로 끌려간 그는 새벽 4시부터 밤 12시까지 '말, 소와 다를 바가 없이' 일했다. 그는 중국에 두고 온 아들을 만나려고 다시 탈북을 감행했고 인신매매로 생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간신히 만난 아들의 첫마디에 박 씨는 무너졌다. "엄마, 왜 날 버렸어." 중국인 남편에게서 '네 엄마가 너 버리고 도망갔다'란 말을 듣고 자란 것이다.

"그 아들이 커서 이제 17살이에요. 영국에서 대학을 다니죠."

박씨는 2008년 영국에 난민 자격을 얻어 북한인 남편과 중국에서 낳은 그 아들을 포함해 세 자녀와 함께 살고 있다. 박 씨는 훌쩍이는 청중들에게 "유럽 국가들이 탈북민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하고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국제 인권단체 '국경 없는 인권'의 윌리엄 포트레 사무총장이 전 세계 15개국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 5만 명의 인권침해 실태를 발표했다. 그는 "해외에 파견된 노동자를 통해 북한은 연 12억~23억 달러(약 1조4160억~2조7140억 원)를 벌고 있으며 이 돈으로 핵개발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제사회가 관심을 가지면서 최근 카타르가 북한 노동자 200명을 추방했고 폴란드도 신규 비자 발급을 중단했다"며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압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