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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야심작 ‘TPP’ 휴지통으로… 중국은 ‘RCEP’ 가속

입력 | 2016-11-14 03:00:00

[트럼프 격랑, 흔들리는 세계질서]美-中, 무역질서 패권 다툼 예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명운을 걸고 추진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앞서 폐기 수순을 밟게 됐다. 오바마 행정부는 대선 후 TPP 의회 비준을 밀어붙일 방침이었지만 공화당이 의회 상·하원 다수당을 석권하면서 빛도 보기 전에 TPP를 접을 수밖에 없게 됐다. 대선이 끝나자마자 트럼프의 오바마 레거시(유산) 지우기가 속도를 내고 있는 모습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일 “미국 민주·공화당 지도부가 대선 결과에 따라 TPP 비준 절차를 더 이상 진행하지 않겠다고 백악관에 통보했다”며 “오바마 행정부 관리들도 현재로선 더 진척시킬 방법이 없음을 인정했다”고 보도했다. 월리 아데예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국제경제 담당 부보좌관은 WSJ 인터뷰에서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가 ‘새 무역협정은 차기 대통령과 논의할 사안’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오바마 대통령이 중국의 굴기(굴起)를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 재균형을 모토로 세계 최대의 단일 무역협정으로 야심 차게 추진했던 TPP는 휴지조각이 돼 버렸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이 경제 질서를 쓰게 할 순 없다”며 TPP를 추진해 지난해 관련 국가들과 협상을 타결했다.

 TPP는 오바마 대통령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대선 유세 중에 핵심 경합 주인 ‘러스트 벨트’(쇠락한 미 중서부 공업지대)의 백인 노동층 표심이 변수로 떠오르면서 뜨거운 정치 이슈가 되었다. 일자리를 잃은 백인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TPP에 반대한 것이다.

 민주당 경선 주자였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도 “미국인들의 건전한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며 TPP 반대를 외쳤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도 표를 얻기 위해 “TPP를 포함해 우리의 일자리를 죽이고 임금을 억제하는 어떤 무역협정도 중단할 것”이라며 “TPP는 대통령으로서도 반대할 것”이라고 입장을 바꿨다. 자신이 국무장관으로 있으면서 추진했던 것을 뒤집어 버린 것이다.

 내년 1월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 미중은 통상질서 주도권을 놓고 새로운 패권 다툼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중국과의 무역역조를 해소하기 위해 환율조작국 지정과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 45% 부과 등의 카드로 중국을 직접 겨냥할 참이다. 반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미국의 TPP 폐기를 호기로 보고 대항 카드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타결을 밀어붙이기 위해 총력을 다할 방침이다. 중국은 올해 이미 미국 주도의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대응하기 위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출범시켰다. 상하이(上海) 국제문제연구원의 장저신(張哲馨) 연구원은 “TPP가 불발되면 미국의 세계 경제에서의 리더십도 의문시되는 반면 중국으로선 아시아태평양 국가들과 경제 관계를 심화하는 큰 기회를 갖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RCEP 체결에 탄력을 받을 뿐만 아니라 시진핑 정부의 역점 대외경제 정책인 ‘일대일로(一帶一路·21세기 육상과 해상의 실크로드 프로젝트)’도 날개를 달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19, 20일 페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RCEP의 조속한 타결을 어젠다로 제시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의 정권인수 기간을 틈타 중국이 아태 지역 무역질서를 재편할 주도권을 잡았다”고 평가했다.

 RCEP는 2012년 11월 캄보디아 프놈펜 동아시아정상회의(EAS) 공동선언을 통해 협상을 시작하기로 한 뒤 지난해 말까지 타결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미국이 TPP 추진에 속도를 내면서 TPP에도 참가하는 베트남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진행이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한편 트럼프 당선인 정권인수위는 TPP와 함께 미국-캐나다-멕시코 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대해서도 트럼프 당선인의 새로운 요구가 반영되지 않을 경우 취임 200일 이내에 폐기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당분간 세계 통상 질서는 ‘트럼프 변수’로 기존 틀이 흔들리는 격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이승헌 ddr@donga.com /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 이세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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