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옷 갈아입는 라커룸 은밀한 대화 공간이자 변신의 공간 스포츠카는 젊은이들 동경 대상, 댄스음악 속도감과도 잘 어울려 10대들 일탈의 자유 자극하는 폐건물-옥상 등도 단골 무대로
아이돌 그룹의 뮤직비디오 배경에는 청소년들의 동경, 변신과 성장에 관한 욕구가 녹아 있다. 라커룸이 등장하는 아이오아이의 ‘너무너무너무’(첫번째 사진), 유령의 집으로 초대하는 트와이스의 ‘TT’(두번째 사진), 자동차 클리셰를 보여주는 샤이니의 ‘링딩동’(마지막 사진). 유튜브 화면 캡처
캐비닛 위에 걸터앉아 노래하거나 그것들을 손으로 밀어 도미노처럼 무너뜨리기도 한다. 소녀시대, 에이핑크, AOA 등의 걸그룹 뮤직비디오에서도 라커룸은 단골 배경이었다. 웹진 아이돌로지의 미묘 편집장은 “라커룸은 아이돌 뮤직비디오의 핵심 클리셰”라고 했다. 트와이스는 신곡 ‘TT’에서 유령의 집을 배경으로, 블랙핑크는 이국적인 건물을 뒤에 두고 노래한다. 아이돌 그룹 뮤직비디오 속 ‘공간의 비밀’에 대해 알아봤다.
라커룸은 아이돌 음악의 주 소비층인 10대 청소년의 공간과 가수의 공간을 연결시켜 준다. 비디오에 교실이나 학교 운동장이 많이 등장하는 것과 비슷하다. 더욱이 라커룸은 변신욕에 관한 상징이 더해진다. 뮤직비디오 제작업체 ‘쟈니브로스’ 김준홍 감독은 “라커룸은 학생들이 모여 옷을 갈아입고 변신하는 공간이자 서로 사적인 얘기를 공유하는 공간”이라며 “캐비닛을 열고 들어가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판타지적 연출도 가능하다”고 했다.
뮤직비디오의 라커룸이 한국적 상황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미묘 편집장은 “영화 ‘브링 잇 온’ ‘트와일라잇’ 등이 유행하던 시기와 맞아떨어진 우리나라 2세대 아이돌, 즉 소녀시대 등부터 미국 학원물의 영향이 짙어졌다”고 했다. 한국적 학교 문화를 배경으로 하되 자유분방하고 세련돼 동경할 만한 미국적 라커룸이 비디오 안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는 “은밀한 고백이나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일본의 하이틴물에서 가져온 이미지 역시 짙다”고 했다.
자동차도 아이돌 뮤직비디오에 즐겨 쓰이는 배경이자 소품이다. 젊은 음악 팬이 동경하는 세련된 이미지를 연출하기에 좋다. 댄스음악의 속도감과도 어울린다. SM엔터테인먼트의 김은아 홍보팀장은 “여러 명의 멤버를 하나의 작은 공간 안에 배치할 수 있어 화면 연출의 측면에서도 용이하다. 촬영용 차량을 대여해 주는 전문 업체도 있다”고 했다. 1940년대형 캐딜락 같은 클래식 카, 람보르기니나 페라리 같은 차는 1회 대여료가 150만∼200만 원을 호가한다. 스포츠카는 동호회를 통해 대여하는 경우가 많고 희귀 차종일 경우 300만∼400만 원까지 간다. 김준홍 감독은 “오토바이는 촬영이 위험하고 가수들 중에 운전을 잘하지 못하는 멤버도 있다”면서 “스피디하고 에너지 넘치는 분위기를 형성하기에 자동차가 좋다”고 했다. 블랙핑크의 ‘불장난’에 스포츠카가, 빅스의 ‘The Closer’에는 벽에 충돌한 차가 등장한다.
버려진 건물이나 옥상도 자주 등장하는 배경이다. 어른들이 배제된, 아슬아슬한 일탈의 공간이자 복잡한 사물이나 인파 없이 멤버들에게만 초점을 맞춰 촬영하기에 적절한 공간이다. 트와이스의 ‘TT’는 핼러윈 데이를 콘셉트로 삼으면서 버려진 유령의 집을 택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