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치유물질’ 잇단 개발
일본 연구진은 인공화합물 ‘로탁세인’을 이용해 자가치유물질을 개발했다(첫번째 사진). 물체가 잘리더라도 로탁세인의 고리들이 서로 달라붙어 스스로 균열 부위를 메운다(두번째 사진). 로탁세인을 넣은 겔을 반으로 자른 뒤 붙여놓자 10분 만에 한 덩어리가 된 모습(마지막 사진). CHEM 제공
과학자들은 상상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이런 물질을 2000년대 초반부터 실제로 개발해왔다. 손상 부위를 스스로 복구하는 물질, 이른바 ‘자가치유물질(self healing material)’이다.
○ 올해 노벨 화학상 수상 성과로 자가치유물질 개발
이런 자가치유물질이 최근 상용화 수준에 이를 만큼 성능이 좋아지고 있다. 하라다 아키라 일본 오사카대 기초과학과제연구센터 교수팀은 화학기술을 이용해 각종 물질이 사람 피부처럼 저절로 복구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학술지 ‘켐(Chem)’ 10일자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로탁세인(rotaxane)’이라는 특수 분자를 이용했다. 로탁세인을 섞은 물질을 ‘겔(gel)’ 형태로 만든 다음, 이를 둘로 잘라 다시 맞대어 놓자 10분 만에 원래 모양대로 달라붙었다.
로탁세인은 본래 프레이저 스토더트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가 1991년 개발했는데, 스토더트 교수는 이 화합물을 만든 공로로 올해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하라다 교수팀은 로탁세인의 분자 끝 부분에 붕산과 알코올 입자를 붙여 주변의 다른 로탁세인 분자와 접착성을 갖게 만들었다. 두 물질이 서로 공유결합이 일어나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연구진은 이 기술을 기계제품은 물론 인공피부 개발에도 이용할 수 있을 걸로 기대하고 있다.
○ 세균 이용해 콘크리트 균열도 복구
자가치유물질 종류는 이밖에도 다양하다. 물질 내부에 사람의 혈관처럼 가느다란 모세관을 심고 화합물을 주입해 두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캡슐 방식과 달리 여러 번 복구가 가능하다.
정찬문 연세대 화학 및 의화학과 교수는 “가격이 비싸 상용화가 어렵지만 사회적 합의가 된다면 가능할 것”이라며 “원자력발전소나 터널 등 안전을 중시해야 하는 건축물을 만들 때 유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가치유물질은 전자제품 같은 정밀제품에도 활용할 수 있다. 최근에는 자석을 이용한 자가치유물질도 등장했다. 배터리 등 전기회로 보호가 필요한 제품 속에 자기장이 강한 ‘네오디뮴’을 섞어 넣는 것이다. 배터리가 일부 파손돼도 전기회로는 연결 상태를 유지한다.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이 이 같은 자가치유 배터리를 만드는 방법을 개발해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8일자에 발표한 바 있다.
안석훈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복합소재기술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국내에서도 자동차나 스마트폰에 난 흠집을 복원하는 자가치유물질을 연구하고 있다”면서 “10년 뒤면 일반인들이 피부로 느낄 만큼 기술이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변지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he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