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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동빈 기자의 세상만車]전기차를 모는 기자 구보 씨의 하루

입력 | 2016-11-10 03:00:00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한 번 충전으로 500km 주행이 가능한 자사의 ‘모델S P100D’를 충전하고 있다. 테슬라 제공

석동빈 기자

 2026년 11월 10일 화요일 오전 6시. 서울 은평구 진관동에 사는 기자 구보 씨(37)는 알람 소리에 잠이 깼다. 어제 늦게 퇴근했더니 30가구 빌라 주차장에 2개밖에 없는 전기차 완속 충전기에 다른 주민의 차가 물려 있어서 충전을 못했기 때문이다.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난 그는 서둘러 잠옷 바람으로 내려가 충전이 끝난 옆집 차에서 커넥터를 빼내 자신의 국산 전기차에 꽂았다. 커넥터는 완충이 되면 잠금장치가 자동으로 풀려 차주가 없어도 차에서 빼낼 수 있다.

 구보 씨는 1시간 급속충전으로 서울에서 부산(400km)까지 갈 수 있다는 광고를 보고 1년 전에 5000만 원을 주고 자율주행기능까지 들어간 전기차를 구입했다. 부족한 충전시설만 제외하면 대체로 만족하는 편이다. 처음에는 차가 너무 조용해서 페라리 12기통의 배기음이 스피커로 나오는 기능을 켜고 다녔지만 공허해서 이젠 사용하지 않는다.

 오전 8시 출근을 위해 차에 앉았다. 목적지인 서울 종로구 신문사까지는 40분이 걸린다고 내비게이션에 뜬다. 스마트폰의 캘린더와도 연동이 돼서 구보 씨의 오늘 일정과 퇴근할 때까지 주행 가능 여부도 알려준다. 공짜 충전이 되는 식당 안내는 기본이다.

 5분쯤 주행했을까. 차에 내장된 인공지능 비서가 “출근길 모닝커피를 드시겠습니까”라고 물어본다. 그러라고 했더니 주행경로상에 있는 커피전문점에 주문과 결제까지 알아서 해준다. 도착 시간에 딱 맞춰 나온 커피를 드라이브 스루 카운터에서 받았다.

 라디오를 켰더니 오늘도 전기차와 관련된 뉴스가 쏟아진다. 충전기를 서로 차지하려다 일어난 살인사건에 구보 씨는 더 이상 놀라지 않는다. 엔진 변속기 등 내연기관 자동차의 부품 수요가 크게 줄면서 관련 회사들의 경영이 악화되고 일자리도 줄었다는 우울한 목소리도 들린다.

  현재 국내 전기차 누적 판매 대수는 70만 대로 전체 자동차 2300만 대의 3%에 불과하지만 벌써 전력 문제가 심각하다. 여름철엔 피크 시간대엔 충전이 제한돼 불편을 겪었다. 매년 30%씩 전기차 시장이 성장하고 있어 당장 원자력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해야 할 상황이지만 환경 문제 때문에 쉽지가 않다. 태양열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가 늘어나는 전력수요를 채워주기엔 역부족이다.

 세계적으로도 자동차산업의 흐름이 크게 바뀌었다. 중국과 미국의 1위 전기차 회사가 합병하면서 기존 자동차 회사들을 크게 긴장시키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힘은 급격히 쇠퇴하고 그 대신 배터리 원료인 리튬 보유국이 뭉쳐서 가격을 폭등시키고 있다. 게다가 평균기온이 1.5도 상승하면서 해수면이 높아져 투발루 같은 일부 섬나라는 사실상 사라졌고 해일과 태풍이 자주 발생하면서 내연기관 자동차의 판매 규제는 한층 심해졌다.

 회사에 출근한 구보 씨는 오후엔 마포구 상암동과 경기 성남시의 정보기술(IT) 회사를 방문해 취재를 하고 복귀했다. 오늘 총 주행거리는 110km이지만 아직도 100km는 더 갈 수 있다. 작은 것에도 기뻐하는 구보 씨는 오늘 주행에 들어간 전기료가 5000원밖에 되지 않아 흐뭇했다.

 이윽고 저녁, 회식 때 소주를 한잔했는데 고민이다. 도심 사용 시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자율주행기능을 이용해 퇴근할 것인지, 아니면 대리운전사를 부를 것인지. 자율주행기능이 발달해 도심에서도 사용이 가능해졌지만 최근 몇 건의 사고로 소송이 빚어지면서 보험 적용이 제한됐다.

 구보 씨는 결국 자율주행으로 집으로 향했다. 졸음이 몰려와 깜빡 잠들었는데 주변 운전자의 신고로 경찰의 단속에 걸렸다. 자율주행기능 이용 시 잠들면 안전운전 불이행으로 10만 원의 범칙금을 내야 한다. 한 달 치 충전비가 한 번에 날아갔다. 역시 잔머리는 쓰는 게 아니다.

 ※현재 개발되고 있는 전기차 기술을 근거로 10년 뒤의 상황을 예상한 소설입니다.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