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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높이만 쑥… 현실은 아직… 한국 OECD 가입 20년, 명과 암

입력 | 2016-10-25 03:00:00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선진화 박차, 노동생산성-근로시간 거의 꼴찌 수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는 한국 경제의 항로를 제시하는 나침반이다. OECD가 던져준 숙제를 깔끔히 마치는 모범생이 되겠다.”

 2012년 4월 박재완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은 앙헬 구리아 OECD 사무총장을 만나 ‘OECD 한국 경제 보고서’를 전달받는 자리에서 이 같은 말로 인사를 건넸다. ‘선진국 클럽’인 OECD에 보내는 찬사이자 한국이 선진국 문턱을 넘기 위해 ‘선배’들을 잘 뒤쫓아 가겠다는 약속이었다.

 한국에 OECD는 여타 국제기구와는 다른 존재다. 6·25전쟁의 폐허에서 구세주처럼 나라를 구해준 유엔, 외환위기 때 저승사자처럼 나타나 한국 경제를 수술대에 눕힌 국제통화기금(IMF) 등과 달리 OECD는 한국이 ‘선진국’이란 명찰을 어색하게나마 달 수 있게 한 ‘멋쟁이 선생님’ 이미지로 다가왔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OECD 가입 이후 정부의 각종 정책은 OECD 기준에 맞춰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한 여정이었다”고 말했다.


○ OECD는 한국의 가이드라인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일각에서는 ‘한국이 너무 빨리 OECD에 가입해 위기를 맞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김영삼 정부가 핵심 정책과제로 내세웠던 ‘세계화’의 업적용으로 쓰기 위해 서둘러 OECD에 가입한 게 외환위기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한국은 OECD에 가입하면서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자본자유화를 실시했는데, 이 틈을 노려 단기 투기자본이 들어와 경제위기를 불러일으켰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실제로 정부는 OECD 가입 10주년을 맞았던 2006년에 펴낸 보고서에서 “금융시장 자유화를 확대하면서 급증한 단기 외화부채에 대한 금융감독의 결함과 기업투자에 대한 취약한 감시 등으로 외환위기가 발생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요즘은 당시 한국이 OECD에 가입한 게 오히려 시의적절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선진국들의 최첨단 정책들을 빠르게 파악해 한국에 적용할 수 있게 되면서 그만큼 한국 경제의 체질이 강화됐다는 설명이다. 경제 정책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정책이 OECD의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수립돼 한국이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다.

 외환위기를 촉발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지나친 주장이라는 지적이 많다. 박성훈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1990년대 초중반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생산시설 과잉이었고 OECD에서 굉장히 많이 논의된 주제였다”며 “OECD에 더 빨리 가입해 적극적으로 논의에 참여했다면 경제구조를 선제적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삶의 질 향상은 숙제

 

OECD 가입 이후 한국 국민은 비로소 스스로의 삶을 선진국들과 비교할 수 있는 잣대가 생겼다. 시의적절하게 나오는 OECD의 다양한 통계로 ‘한국의 오늘’을 평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주 5일제 시행이다. 토요일 근무가 당연하던 시절에 한국인이 연간 2637시간을 근무하며 1400∼1500시간을 일하는 선진국보다 압도적으로 장시간 근무에 시달린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주 5일 근무제 논의를 본격화할 수 있었다.

 20년이 지났지만 한국은 여전히 OECD 회원국과 비교할 때 가야 할 길이 멀다. 삶의 질 만족도에서 한국은 10점 만점에 5.80점(27위)으로 OECD 평균(6.58점)에 한참 못 미친다. △부모-자녀가 함께 있는 시간(48분) △어려울 때 의지할 사람이 있는지(100점 만점에 72.37점) △합계출산율(1.19명) 등은 34위로 최하위다.

 전문가들은 가입 20주년을 맞은 현 시점에서 한국과 OECD의 새로운 관계 설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내놓는다. OECD에 새로운 발전모델을 제시하며 국제사회에서의 논의를 주도하는 능동적인 모습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수길 한국지속가능발전해법 네트워크 상임대표는 “2010년 한국은 녹색성장이란 새로운 글로벌 발전 모델을 제시해 OECD와 글로벌 정책혁신 파트너십을 맺었다”며 “이런 사례가 쌓여 가면 한국과 OECD 간의 수평적 파트너십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이상훈 january@donga.com·손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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