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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류길재]정말로 북한 정권이 붕괴한다면

입력 | 2016-10-18 03:00:00

김일성 사후 北 붕괴론 20년 넘게 제기됐지만… 과학적 예측은 불가능
북 붕괴 이후를 대비하려면 南 내부 정쟁과 적의 거두고 김정은 정권에 맞서 싸워야




류길재 북한대학원대 교수 전 통일부 장관

 1994년 김일성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김씨 왕조의 몰락을 예견하기에 충분한 대사건이었다. 당시 많은 학자가 북한의 조기 붕괴를 예상하는 전망을 내놨다. 이들 대부분은 해외에서 국제정치나 비교정치를 공부한 분들이었다. 그러나 이들과는 달리 평생을 북한만 들여다본 북한 전문가들은 붕괴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었거나, 생존에 비중을 두었다.

 그 직후 북한은 몇백만 명에 이르는 아사자를 낳을 만큼 경제 자체가 붕괴했다. 수많은 탈북자가 대륙을 떠돌았고, 그 일부가 한국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1997년에는 황장엽 노동당 비서가 망명했다. 그는 망명 외교관 중 최고위급이라는 태영호 주영 공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위치였다. 나중에 그는 북한 정권이 오래가지 않을 줄 알고 왔다고 했다.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지났다. 북한 권부의 중심에 있던 사람조차 붕괴를 예견하지 못했다.

 탈북자가 증가하고 있다. 전년 대비 21% 늘었다. 3만 명에 이른다. 그런데 이탈자 수로만 본다면 여전히 독일과는 큰 격차가 있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다음 해인 1962년부터 장벽이 무너지기 전해인 1988년까지 매년 1만3400명에서 4만3300명에 이르는 동독인들이 서독으로 넘어갔다. 이 수만 60만 명이다. 동독 인구가 1700만 명이므로 3.5%에 이른다. 장벽 구축 이전에 넘어간 사람들까지 합치면 무려 400만 명에 이른다. 만일 이탈자로만 본다면 독일 통일은 훨씬 더 전에 이뤄졌어야 할지 모른다.

 다시금 북한 붕괴론이 회자되고 있다. 그런데 붕괴론은 정확한 분석과 판단에 기초한 과학적인 예측의 영역이 아니다. 아무리 정교한 정치 변동론과 혁명론을 공부하고, 온갖 징후와 정보들이 그 이론에 부합해도 붕괴를 예측할 수 없다. 한마디로, 붕괴해야만 알 수 있다. 미국의 난다 긴다 하는 소련 전문가들도 소련의 몰락을 예측하지 못했다.

 그런데 정말로 북한 정권이 붕괴할 것이 확실하다면, 그 다음에 물어야 할 질문은 그것이 우리에게 바람직한 결과로 이어질 것인가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흡수통일이다. 그런데 그 과정이 그리 간단치가 않다. 어떤 방식으로 붕괴하느냐가 관건이다. 민중봉기냐, 군사쿠데타냐, 최고지도자에 대한 우발적 암살이냐 등에 따라 이후 과정은 큰 차이를 드러낼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내란이 발생할 수도 있고, 다른 세력이나 인물이 정권을 잡을 수도 있다. 미국이나 중국이 어떤 방식으로 개입할지도 알 수 없다.

 가장 바람직하기는 포스트 김정은 체제가 남한과의 통일을 원하고, 그런 과정이 국제사회의 축복 속에 이뤄지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진단이다. 물론 역사는 전문가들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독일의 경험을 떠올리게 된다. 통독 당시 3위의 경제대국, 정치적으로 안정된 민주 정체, 복지국가, 탈냉전 전환기와 외교적 위상 및 역량 등 우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이점을 지녔다. 무엇보다 양독 간에 폭넓은 교류와 협력이 있어서 동독 주민들이 서독을 여행하고 방송을 볼 수 있었다. 핵 문제도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자명해진다.

 대한민국 자체가 건강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안정되어야 하고, 경제적으로 활력이 있어야 하고, 시민들이 다양성과 공존을 존중해야 하고, 외교 안보적으로 튼튼한 태세를 갖춰야 한다. 탈북민들의 입을 통해 한국 사회가 살 만한 사회라는 얘기가 북으로 전해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이런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정국은 정쟁과 의혹으로 날이 새고, 경제는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사회는 적의와 불신으로 가득 차있고, 나만 잘살면 된다는 의식이 만연해 있다. 국민들은 불안하고, 불편하다.

 이런 와중에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증언이 나왔다. 송 전 장관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정부의 정책을 ‘통보’든, ‘확인’이든 북에 전달한 것은 말이 안 된다. 관련 당사자들의 진솔한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북정책을 놓고 우리 내부에서 극단적인 용어를 동원하면서 싸우는 일은 그만하자. 싸워야 할 대상은 김정은 정권이지, 우리끼리가 아니다. 북한 정권의 붕괴를 바라고, 동포들에게 보편적인 인권을 누리게 하는 게 우리의 목표라면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초점을 맞추자.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면 붕괴와 인권을 입에 담지 않는 게 좋다.

류길재 북한대학원대 교수 전 통일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