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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홍수용]맥킨지 보고서

입력 | 2016-10-15 03:00:00


 미국 뉴욕 52번가에 있는 ‘파크 애비뉴 플라자’ 빌딩 로비는 거지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 이런 열린 건물에 고객 비밀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삼는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가 입주해 있는 건 아이러니다. 어떤 국가든 기업 간 담합을 금하지만 기업인들이 맥킨지로 몰려가 비밀 컨설팅을 받는 것은 어쩌지 못한다. 업계에서는 맥킨지를 ‘그 회사(The firm)’라고 부른다. 최고의 찬사다.

 ▷한국에 컨설팅 개념이 들어온 건 1997년 외환위기 직후였다. ‘하면 된다’ 정신으로 달려온 기업들에 맥킨지는 생산성을 요구했다. 무리한 차입으로 수익률을 떨어뜨리는 경영을 ‘가치 파괴’라고 비판하며 부가가치를 높이라는 맥킨지 보고서에 한국 사회는 열광했다. 지금 보면 너무 당연한 말이라 낯 뜨겁다.

 ▷맥킨지의 장점은 글로벌 네트워크, 전략설계 기법, 그리고 오랜 컨설팅 경험에 있다. 사전 자료 조사 후 현장에 들어가 인터뷰를 하고 글로벌 연구인력과 공동으로 중간 보고서, 최종 보고서를 만드는 과정이 기계처럼 돌아간다. 프로젝트 매니저, 모듈 리더 등 5∼10명이 만드는 3개월짜리 보고서의 값이 10억 원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효과는 글쎄, 기대에 못 미친다. 2007년 LG전자 컨설팅 결과 “기술보다 마케팅 비중을 늘리라”고 했던 맥킨지의 조언은 결과적으로 실패였다.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13일 국회 국감에서 조선업 경쟁력 강화 방안과 관련해 “아직 컨설팅을 진행한 맥킨지 최종 보고서가 안 나와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 답했다. 대우조선해양을 끌어안고 가기 위해 맥킨지를 활용하겠다는 말로 들린다. 한진해운을 덜렁 법정관리 처리한 뒤 궁지에 몰린 정부로선 대우조선까지 법정관리에 넘기기가 부담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조선 3사 중 대우조선의 회생 가능성이 가장 낮다’는 맥킨지의 중간 보고서를 받아본 대우조선이 12일 “기본 가정부터 잘못된 내용을 수용할 수 없다”는 반박 자료까지 내버렸다. 정부가 이제 와서 맥킨지에 ‘최종 보고서 마사지’를 요구한다면 또 한 번의 청문회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