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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최진석]이익(利)

입력 | 2016-09-03 03:00:00

맹자의 仁義사상, 이익 도외시 안해…노자도 국익 언급
명분에 사로잡혀 ‘利’ 놓쳐버리면 정치적 갈등 커져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건명원 원장

인문학이 유행이다. 그러나 인문학 지식을 아무리 쌓아도 인문적 시선으로 세계를 관리하고 인도하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별무소용이다. 여기서 ‘소용(所用)’을 들먹이는 것 가지고 인문학의 본령을 벗어난 태도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인문적 시선을 선진국과 연결하고, 그것을 산업의 새로운 장르가 열리는 토양이라고 말하면 인문적이지 않다고도 한다. 철학이니 인문학이니 예술이니 문화니 하는 것들은 세상사의 소용이나 이익(利)과 단절되어 있어야 더 빛나는 것으로 치부하는 소극적 인식이 팽배하다. 이런 것들이 빚어내는 이익이 진짜 이익 혹은 큰 이익임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선진국은 큰돈을 벌지만 후진국은 작은 돈을 벌며, 선진 기업은 더 윤리적이고 후진 기업은 덜 윤리적인 이치들이 다 여기에 연관되어 있다.

이익과 명분 사이에서 이익을 선택하는 것은 천하고, 도덕적 명분을 선택하는 것은 귀하다고 보는 인식은 ‘맹자’의 한 구절을 치우쳐 읽은 데서부터 나온다. ‘맹자’의 첫 페이지다. 맹자가 양나라에 이르자 왕이 반기며 말한다. “내 나라를 이롭게 해주시려고 천리도 멀다 않고 와 주셨군요!” 맹자가 응답한다. “왕께서는 왜 이익(利)만 말씀하십니까? 인의(仁義)라는 것도 있지 않습니까?”

이 말을 듣고 수준 높은 삶이라면 인의를 추구해야지 이익을 추구하면 안 되는 것으로 여겨 왔다. 그렇지만 맹자는 도덕적 명분과 이익 사이에서 이익을 도외시해야 한다는 뜻으로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인의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라 하지 않고, “인의라는 것도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는 것으로 증명된다. 쉽게 말하면, 이익을 이익으로만 추구하면 안 되고, 이익이 도덕적 명분 위에 있어야 진짜 큰 이익을 취하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기업도 어느 단계에서는 윤리적이어야 더 큰 발전을 이룬다는 연구 결과와도 맥을 같이한다.

맹자의 말은 이어진다. “연못에 빽빽한 그물을 내리지 않으면, 물고기들이 이루 다 먹지 못할 정도로 많을 것입니다.” 연못에 빽빽한 그물을 내리지 않은 것이 ‘인의’라는 도덕적 명분에 따르는 일이고, 많은 물고기는 결과적인 ‘이익(利)’에 해당한다. 사상의 생산자인 맹자는 구체적 현실에서 관념적 명분이 떠오른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의 시선은 ‘이익’에 집중되는데, 관념적 지식을 수입한 나라 사람들은 반대로 명분만 취하고 이익을 소홀히 한다.

세상사의 이익과 아무 관계가 없어 보이기로는 노자(老子)가 제일이다. 하지만 노자의 시선도 궁극적으로는 이익(利)에 닿아 있다. ‘도덕경’ 제19장에서 노자는 말한다. “절성기지(絶聖棄智)!” 유가적 성인이나 지혜로운 자를 높이는 이데올로기를 끊으라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여기까지만 읽고, 그 다음의 말은 그냥 외면한다. 하지만 문장은 다음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하면 “백성들의 이익이 100배로 증가한다”. ‘절성기지’라는 무위자연의 태도가 나라의 ‘이익’을 키우는 장치다. 나의 견강부회가 아니라 ‘도덕경’에 쓰인 그대로다. 인의도 무위자연도 국익을 보장하면서 탄성을 갖는다.

미국이나 중국이나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은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이유를 자국의 이익 때문이라고 쉽게 말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국가의 이익을 근거로 정책적 결단을 해내는 장면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명분을 앞세우는 일이 더 많다. 심지어 어떤 대통령은 “적어도 나는 이익과 명분 중에 이익을 선택하지 않았다”라고까지 말한다. 우리가 얼마나 명분에만 사로잡혀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익(利)’이라는 것은 논쟁이나 갈등을 합의에 이르도록 하는 근본적이고도 현실적인 토대이다. 그러나 ‘이익(利)’을 근본적인 토대로 보는 힘이 약한 사람들은 명분을 붙들고 논쟁과 갈등을 극단까지 끌고 가서 분열만을 조장하지 합의에 이르지는 못한다. 명분은 패거리의 기준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패거리가 공유하는 명분을 벗어나서 나라의 이익을 중심에 놓는다면 우리나라의 많은 정치적 갈등도 크게 줄 것이다. ‘이익(利)’에 초점을 맞추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말자.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건명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