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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 선생과 함께 지내고 계실 것”

입력 | 2016-08-24 03:00:00

[손기정 일장기 말소 80주년]이길용 기자 3男 태영씨
“1950년 납북후 사망경위 몰라… 묘소 없어… 추모비석 세웠으면”




“아버지(이길용 전 동아일보 기자)가 ‘대표 선발전에서 우리끼리 싸우지 말고, 일본 대표선수를 어떻게 견제할 것인지 대책을 세우라’고 했다고 손기정 선생이 생전에 말씀하셨어요.”

일장기 말소를 주도한 이길용 동아일보 기자의 3남인 이태영 씨(75·대한언론인회 감사·사진)는 19일 인터뷰에서 손 선생이 아버지를 회고하며 했던 말을 전했다. 이 씨는 아버지와 손 선생의 인연 덕에 손 선생과 가까이 지냈다. 손 선생은 이 씨에게 “이길용 기자는 선수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넣는 말을 자주 하셨고, 기자 이전에 애국지사로 존경했다”고 했다.

이길용 기자는 남만주철도회사 경성관리국에서 근무하던 1920년 반일 격문을 배포하다 발각돼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뒤에 동아일보 사장이 되는 고하 송진우 선생을 옥중에서 만난 인연으로 1921년 동아일보에 입사했다. 일장기 말소로 강제해직됐다가 1945년 동아일보 복간 뒤 재입사했다.

이 씨는 6·25전쟁 전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현 일민미술관)에 아버지를 만나러 가족과 가던 기억이 선하다고 했다. “제가 삐거덕거리던 동아일보 건물 계단을 올라가면 아버지가 밝게 웃으며 점심 값을 주시곤 하셨죠.”

그러나 아버지는 1950년 7월 납북됐다. 이 씨는 납북자가족회에서 일하며 아버지의 소식을 알아보려 했지만 아직도 정확한 사망 경위를 모른다. 당시 함께 납북됐다 도망쳐 나온 황신덕 여사(전 추계학원 이사장)로부터 “서대문형무소에서 북측으로 떠날 때는 같이 있었는데 평양에 도착해 보니 안 보이더라”는 말을 들었을 뿐이다. 북한군이 평양에서 후퇴할 때 대동강변에서 자행된 집단 처형 와중에 돌아가셨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이 씨는 1995년 돌아가신 어머니를 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통일동산 경모공원에 모셨다. 임진강에서 헤어진 두 분의 영혼이 혹시라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자신은 아버지를 비롯해 여러 인사들이 전쟁 당시 납북될 때 지나갔던 서울 구파발의 ‘납북길’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산다.

이 씨의 소원은 유해가 없어 묘를 쓰지 못한, 아버지의 뜻을 기리는 비석을 세우는 것이다. “아버지가 일제강점기 옥고를 치렀고 또 납북 전 잠시 감금됐던 서대문형무소(현 서대문 독립공원)에 비석을 세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아버지가 배재학당을 졸업했으니 서소문의 배재공원도 좋고요. 지금 손 선생과 아버지의 영혼은 함께 계시지 않을까요?”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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