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남자레슬링대표 김현우.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 레슬링 김현우 안타까운 동메달
선수도 감독도 통곡…맘 다잡고 감동 선물
“선생님, 혹시 제가 꼭 뛰어야 하나요?”
김현우(28·삼성생명·사진)가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5kg급 16강전에서 로만 블라소프(러시아)에게 석연찮은 판정으로 패한 뒤 안한봉(48) 감독과 박치호(44) 코치(이상 그레코로만형 담당)에게 건넨 첫 마디였습니다.
물론 정말 뛰지 않겠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멈추지 말자. 아무리 이상한 상황으로 괴롭혀도 보란 듯 네 실력을 증명하자”는 안 감독의 말에 김현우는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점심식사도 거르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킨 뒤 다시 매트에 오른 모습은 여전히 세계챔피언다웠습니다. 꽉 다문 입술, 움켜쥔 주먹에서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강한 전사의 기개가 엿보였습니다.
패자부활 1차전에서 만난 중국선수도, 동메달을 놓고 최종전에서 겨룬 크로아티아선수도 독기를 잔뜩 품은 김현우의 마지막 전진을 가로막지 못했습니다. 벤치에 앉을 수 없는 안 감독을 대신해 김현우와 함께 해준 이는 자유형 박장순(48) 감독과 앞서 그레코로만형 59kg급에서 탈락한 이정백(30·삼성생명)이었습니다.
아마 상상도 못할 겁니다. 4년이란 긴 시간을 준비해놓고도 극히 짧은 시간에 운명이 결정되는 참담한 심경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일까요? 어지간한 정신력이 아니라면 그렇게 억울한 일을 겪고도 평정심을 유지할 순 없을 겁니다. 더욱이 팔까지 빠지는 부상을 당하고도요. 또 자신의 아픔은 잊고 매트에 나와 후배의 뭉친 근육을 풀어준 선배(이정백)의 의연한 태도는 어떻고요. 그간 말 많고 탈 많은 모습을 보여준 한국레슬링이지만, 적어도 리우올림픽에선 아름다움을 넘어 뭉클한 감동을 전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리우데자네이루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