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남자펜싱대표 박상영.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 박상영이 상영한 감동의 드라마
생애 첫 올림픽, 즐기자는 마음으로
막상 결승 무대 오르자 평정심 잃어
스스로 다독인 주문…역전승 이끌어
전혀 주목받지 못했던 ‘새내기 약자’가 ‘베테랑 강자’의 덜미를 낚아챘다. 그것도 큰 점수차로 밀리다 뒤집었다. 반전에 역전까지…. 우리가 스포츠를 사랑하는 이유다.
그러나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었다. 세계랭킹 3위를 상대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기까지 필요한 시간은 딱 43초였다. 각본 없는 드라마가 ‘상영’됐다. 경기 종료 1분41초 전 14-14 동점을 만든 뒤 기습적 찌르기로 15-14 역전승을 완성하고 대한민국에 3번째 금메달을 안겼다.
리우 현지시간 8월 9일. 박상영은 이날 한국의 마지막 메달 주자였다. 믿었던 유도에서 또 다시 금맥을 캐지 못한 가운데, 그마저 시상대에 서지 못했다면 한국 선수단은 이틀 연속 소득 없이 하루를 마감할 뻔했다. 2000년 시드니대회 김영호(남자 플뢰레 개인)와 4년 전 런던대회 김지연(여자 사브르 개인), 남자 사브르 단체에 이은 한국펜싱의 올림픽 통산 4번째 금메달이자, 에페 종목의 첫 금메달이었다. 태극 문양의 투구를 벗어던지고 한껏 포효한 박상영은 이 세상 모든 것을 가진 사나이 같았다.
어느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 리우올림픽 개막에 앞서 태릉선수촌에서 진행된 펜싱대표팀 미디어데이 행사 때도 박상영을 주목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시선이 남현희(플뢰레), 신아람(에페), 김지연(사브르·이상 여자부) 등 기존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을 향했다. 철저한 무명의 선수가 이제 대한민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선수로 떠올랐다.
생애 첫 올림픽은 “세계인의 축제를 즐기자”는 마음이었다. 컨디션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모든 것을 다 쏟아낸 뒤 피스트를 후회 없이 빠져나가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결승 무대에 오르자 평정심을 잃었다. “더 잘하려다보니 더욱 풀리지 않았다.” 분명 위기였다. 이때 다시 주문을 외웠다. “천천히! 정신 차려!” 욕심을 내려놓자 상대의 허점이 보였다. 임레의 장기인 팔 찌르기 패턴을 읽을 수 있었다. 함께 팔을 겨냥하는 척하며 어깨를 향해 쭉 칼을 뻗었다.
내내 숨죽이며 경기를 지켜본 브라질 팬들도 박상영이 써내려간 드라마에 취했다. 1점, 1점 추가하자 장내는 떠나갈 듯했다. 모두가 동시에 발을 구르며 박상영을 향해 힘을 실어줬다. 그는 “런던올림픽도 4일차에 금맥이 뚫렸다. 마침 오늘이 4일째다. 앞으로는 탄력을 받아 선수단이 치고 올라설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박상영
▲생년월일=1995년 10월 16일
▲키·몸무게=178cm·75kg
▲출신교=진주제일중∼경남체고∼한국체대(재학중)
▲세계랭킹=21위
▲수상 내역=2013톈진동아시아경기대회 단체전 금메달, 2014인천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 2016밴쿠버펜싱월드컵 개인전 동메달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