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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디자인은 편한 쓰임새다

입력 | 2016-06-21 03:00:00

英 디자이너 토머스 헤더윅 展




싱가포르 난양이공대 캠퍼스에 2015년 세워진 ‘러닝 허브(Learning Hub)’ 건물. 중앙 아트리움과 정원 공간을 타원형 교실이 둘러싼 형태로 평면을 쌓아 올렸다. 섬세하게 표면 처리한 외벽 패널의 실물 모형을 전시실에서 볼 수 있다. 디뮤지엄 제공

디자인은 구경하는 대상이 아니라 사용하고 경험하는 대상이다. 10월 23일까지 서울 용산구 디뮤지엄에서 열리는 ‘헤더윅 스튜디오: 세상을 변화시키는 발상’전은 마디마디 그 명제를 확인시킨다.

홍보용 전단으로 만든 정체불명의 장식 조형물, 진부한 소개 자료 영상, 번잡하게 배치한 구조 디자인 모형 등 도입부는 가급적 빠르게 훑어 지나길 권한다. 2010년 중국 상하이 엑스포 영국관, 2012년 영국 런던 올림픽 성화대의 히트 이후 세계 디자인 업계의 이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천재 디자이너’ 토머스 헤더윅(46·영국·사진)의 진가는 전시물 배치 간격이 여유로워지는 중반 이후 차분히 드러난다.

지난해 3월 늦저녁 홍콩 ‘퍼시픽 플레이스’ 쇼핑몰 지하 벤치에 앉아 ‘공간을 디자인한 이와 사용자가 모두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무미건조한 리듬으로 한없이 복잡하게만 얽혀 나간 주변 거리의 스트레스를 그 커다란 공간의 여백이 중화시키고 있었다. 완만한 폐곡선을 중첩시켜 얼핏 나이테를 연상시키는 패턴이 공간 전체부터 나무 벤치, 엘리베이터 버튼까지 이어졌다. 헤더윅 스튜디오는 2005년부터 6년 동안 재개발이 진행된 이곳의 디자인을 맡았다.

그 벤치와 엘리베이터 버튼이 이번 전시에 놓였다. 하지만 관람객은 얇은 폐곡선 합판을 쌓아올려 만든 목재 벤치에 앉아 든든한 양감을 느껴 보거나 청동 엘리베이터 버튼의 경쾌한 촉감을 확인할 수 없다. 유리판 7개를 겹쳐 트럭이 올라가도 끄떡없다는 슬래브 겸 채광창 위에 발을 올려 볼 수도 없다. 보이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①버려진 제지 공장을 개조한 영국 봄베이사파이어 증류소(2014년). 양조에 쓰는 식물재배용 온실이 돋보인다.②2010년 중국 상하이엑스포 영국관. 외벽에 설치했던 투명막대 6만개 중 실물 일부를 전시한다.③50년 만에 새로 디자인된 런던 버스(2012년). 차량 앞부분 실물 모형을 선보인다.

평평한 재료에 완만한 굴곡을 더해 운동성을 얻거나 전체 형태의 곡선 윤곽을 부분적 디테일까지 레이어로 일관하는 스타일이 헤더윅만의 특별함이라고 할 수는 없다. ‘부럽다’고 여겨지는 것은 구상 단계에서 엮은 콘셉트의 무게중심을 결과물에까지 관철하는 뚝심이다. 그 뚝심은 학교와 다리 등 공공시설에서 더 도드라진다. 지난주 기자간담회에서 헤더윅은 “병원 학교 등의 공공시설과 개인 공간의 질적 격차에 대해 어릴 때부터 문제의식을 가졌다. 공공 프로젝트는 규제와 예산 제한 때문에 언제나 한층 더 강한 투지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2018년 완공 예정인 런던 ‘가든 브리지’ 모형은 템스 강을 가로지르는 보행자 전용 다리를 보여 준다. 여기 오른 사람들은 강을 건너는 동시에 울창한 숲길 300m를 걷는다. 강바닥에 내린 교각 2개의 내부에 다리 위 나무의 뿌리가 자랄 공간을 뒀다. “창의성보다는 경험에서 끌어낸 아이디어를 선호한다”는 디자이너의 의지가 또렷이 전해진다.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이 체험할 수 있는 유일한 콘텐츠는 출구 앞에 놓인 ‘스펀(spun) 체어’들이다. 영화 ‘인셉션’에 등장한 팽이를 닮은 형태의 1인용 의자를 전시실 가득 늘어놓았다. 불안해 보이지만 여기 앉아 몸을 회전시켜 보지 않으면 이 전시에 찾아간 의미가 없다. 의외의 편안함과 균형감을 경험할 수 있다. 관람 동선과 전시물 배치에는 약간의 재정비가 필요해 보인다. 간담회 때 놓여 있던 ‘확장되는 그릇과 테이블’ 모형은 그대로 비치해 두는 편이, 구경을 넘어선 이해를 위한 배려가 될 거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