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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D/Topic]기부, 하고 나면 끝? “NO! 기부자 권리 챙겨요”

입력 | 2016-05-16 10:09:00

동아일보 Magazine D·한국가이드스타 공동기획 ‘똑똑한 기부’ 캠페인 ②




《좋은 일에 쓰일 거라 굳게 믿고 비영리 민간단체(NPO)에 기부한 돈, 과연 올바로 쓰였을까. 개인 기부자가 이를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비영리 분야의 투명성 제고는 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한 요건이지만, 기부자는 물론이고 NPO조차 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동아일보 ‘Magazine D’는 비영리단체 재정내역 공개에 앞장서는 공익법인 한국가이드스타와 함께 올바른 기부 문화 확산을 위한 ‘똑똑한 기부’ 캠페인 기사를 기획했다.》


정기적으로 한 비영리 민간단체(NPO)에 옷가지와 잡화를 기부하는 주부 김지연(34) 씨. 김씨는 “예전에는 헌 옷가지가 나오면 아파트 인근에 있는 의류수거함에 넣곤 했는데, 자원재활용업체들이 불법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는 기부처를 찾다가 자선단체에 정기적으로 옷을 택배로 보낸다”고 말했다. 김씨는 “종종 기부한 물품이 제대로 쓰였는지 궁금할 때도 있지만, 좋은 일을 한다고 하니 믿고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단 기부물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 번쯤 내 기부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궁금한 적은 없었는가. 궁금증이 생긴다고 해도 그걸 개개인이 확인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게 미덕인 우리 사회에서는 기부라는 ‘의무’는 있을지언정 기부자의 ‘권리’는 꽤 낯선 개념이다.

장후석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이 발표한 ‘나눔의 경제학-영미와 비교한 한국 나눔문화의 특징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국내의 기부 참여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4개국 중 25위로 하위권이었다. 기부금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0.87%)은 미국(2.0%)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자원봉사의 경우 국내에서는 청소년의 참여율이 높은 편이었으나, 영국과 미국에서는 전 연령대에서 비슷한 수준의 참여율을 보였다. 국내에서도 개인 중심의 기부 문화가 정착되며 2006년 5조 원이던 개인기부금은 2009년 6조 원, 2011년 7조 원을 넘어, 2013년 7조 8000억 원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그러나 전체 금액 중 개인기부액의 비중은 60%대에서 머물러 70%가 넘는 미국의 개인기부에 비하면 낮은 편이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까지 종교적 이유의 기부가 전체 기부액의 50%를 넘었으나 최근에는 30%대에 그치고, 영국에서는 종교적 이유의 기부가 전체 기부액의 14%밖에 안 된다. 국내의 경우 ‘기빙 코리아’의 2014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종교적 기부 참여율은 38%다. 하지만 금액 면에선 종교적 기부(121만5000원)와 순수 기부(32만1000원)의 차이가 큰 탓에 약 80%가 종교 관련 기부로 분류된다.

해외에서는 기부자들이 해당 비영리단체의 신뢰성, 투명성, 책임성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기부자로서의 권리를 찾으려는 욕구 또한 높다. 이 때문에 정보 공개가 필수가 아닌 종교단체들도 기부자들의 압박에 기부금 사용 내역을 속속 공개한다.

1997년 국제전문모금가협회(AFP)에서는 ‘기부자 권리 장전’을 통해 기부 받는 단체의 투명성 및 책무성 의무와 더불어 기부자의 권리를 강조해왔다. 이 선언문은 기부 목적에 맞게 기부금이 사용되는지 확인할 권리, 단체의 재무보고서에 접근할 권리 등을 비롯한 10가지 기부자 권리를 보장한다.

▼기부자 권리 장전(A Donor Bill of Rights)

국제전문모금가협회(AFP)의 ‘기부자 권리 장전’. / 홈페이지 캡쳐

1. 기관의 사명, 기부금과 물품의 사용방식, 기부자의 기대에 맞게 기부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관의 역량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

2. 해당 기관의 이사진에 대해 알 권리와 이사회가 사회적 책무에 입각해 신중한 판단으로 업무를 수행할 것을 기대할 권리가 있다.

3. 최근 발행한 회계 보고서를 확인할 권리가 있다.

4. 자신의 기부금이 자선을 목적으로 사용되는지 확인할 권리가 있다.

5. 합당한 기부인증과 표창을 받을 수 있다.

6. 법에 따라 비밀이 유지되는지, 기부금품이 신중하게 다뤄지는지 보증 받을 수 있다.
7. 대상조직과 기부자의 관계가 전문적일 것을 기대할 권리가 있다.

8. 기부금품을 수집하는 자가 자원봉사자, 기관 직원, 고용된 운동원인지 알 권리가 있다.

9. 기부자 메일 리스트가 다른 자선기관과 공유될 경우 자기 이름을 삭제할 권리가 있다.

10. 기부 관련사항을 자유롭게 문의할 수 있고, 신속하고 정직한 답변을 받을 수 있다.


 
‘기부자 권리 장전’에 따르면 기부금을 받은 단체는 기부자가 지정한 목적대로 기부금을 사용하고, 결과에 대해 투명한 보고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기부자는 자신이 약속한 기부에 대해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이행할 도덕적 책임이 있다. 기부자는 ‘신뢰’를 기반으로 공익을 위해 ‘투자’하는 투자자인 셈이다.

선진기부문화 확산을 위해서는 기부자가 스스로를 ‘소비자’로 인식해야 한다. 기부처의 비전과 성과, 재무운용 등을 신중하게 고려해 기부를 결정하고, 기부에 따라 발생하는 권리 보장을 스스로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기부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더는 까다롭거나 유별난 게 아니라 현명하고 지혜로운 행위로 인식이 전환돼야 할 때다.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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