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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고미석]최초의 무슬림 런던시장

입력 | 2016-05-10 03:00:00


고국 떠난 파키스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이 영국이다. 최근 파키스탄 이민 2세 사디크 칸이 런던시장에 선출되자 이역만리 파키스탄 정계가 들썩인 이유다. 노동당 소속 칸은 득표율 57%로 집권 보수당 후보를 제치고 첫 무슬림 시장이 됐다. 그는 버스기사 아버지와 재봉사 어머니 사이 8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임대주택에 살며 공립학교를 다녔고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다 2005년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런던 시민 8명 중 1명이 무슬림인데 그중 파키스탄계가 압도적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1950, 60년대 대거 이민을 받은 결과다. 당시 파키스탄 같은 영연방 출신 이민자는 시민권을 쉽게 받았다. 1947년 파키스탄이 인도에서 분리 독립한 뒤 빈곤계층이 더 나은 삶을 찾아 영국에 건너왔다. 인력 부족에 허덕였던 영국도 파키스탄 이주민들을 반겼다.

▷철강 직물산업을 중심으로 취업한 초기 이민자는 생활이 안정되면 바로 가족을 초청했다. ‘연쇄이민’을 통해 파키스탄 공동체가 영국에 뿌리를 내렸다. 이 공동체가 칸처럼 긍정적인 롤 모델만 배출한 건 아니다. 주류 사회에 대한 소외감과 반발로 테러범의 온상이 됐다는 비판도 있다. 2005년 7월 런던에서 파키스탄계 4명이 동시다발 자폭테러를 벌였다. 작년 이슬람국가(IS) 가담을 위해 시리아로 떠난 10대 소녀 3명의 배후가 파키스탄계 여성이란 사실도 드러났다.

▷이슬람 공포증을 딛고 기독교 문화권인 서구 국가의 수도 시장에 당선된 것만으로 칸이 주목받는 것은 아니다. 종교나 이념을 떠나 소통과 통합을 위한 그의 유연한 언행이 높게 평가받고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고 당내 강경좌파 제러미 코빈 당수와 거리를 둔다. 7일 취임식에선 “모든 런던 시민의 시장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골수 지지층에 집착해 외연을 넓히지 못하면 노동당의 미래는 없다는 게 그의 지론. 다양한 정치세력을 끌어안겠다는 칸의 ‘빅텐트(Big tent)’ 전략이 그를 런던시장으로 만들었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