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준 사회부장
양극화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됐지만 당시 고시생들도 빈부 격차가 극명했다. 부유층 자제들은 시간을 아끼려고 신림동에서 하숙하며 에어컨 달린 대로변 독서실에서 공부했다. 반면 궁핍한 노장들은 관악산 자락 값싼 고시원에 둥지를 틀었다. 작은 쪽방은 책상 아래로 발을 밀어 넣어야 겨우 누울 수 있었고, 방 하나를 둘로 쪼개 베니어판으로 어설프게 벽을 만든 고시원은 옆방의 책장 넘기는 소리까지 들렸다.
그래도 노장들에겐 꿈이 있었다. 노무현, 김선수의 합격기를 읽고 또 읽으며 ‘나도 언젠가는 멋진 합격기를 쓰리라’ 자기 최면을 걸었다. 이런 표현을 좋아하지 않지만 ‘개천에서 용 나는’ 모습도 종종 봤다. 사법시험이 누구에게나 균등한 기회를 보장한 덕이다.
비단 노장들뿐 아니라 국민이 로스쿨을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다. 지난해 5월 본보 여론조사에 따르면 로스쿨 입학 절차가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는 응답(56.0%)이 공정하다는 대답(25.8%)보다 훨씬 많았다. 선발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부모의 직업, 재력 등이 입학을 좌우할 것이라는 게 주요 이유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기남 의원이 로스쿨 졸업시험에 떨어진 아들을 구제하기 위해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고관대작(高官大爵) 자녀의 로스쿨 부정 입학 루머도 줄을 이었다.
결국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16일부터 약 두 달간 전국 25개 로스쿨의 최근 3년간(6∼8기) 부정 입학 사례를 조사했다. 그러나 석 달 넘게 뜸들이다 최근 발표한 결과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자기소개서에 ‘아버지가 시장, 법무법인 대표, 지방법원장’이라고 적은 것을 포함해 24건의 부정을 적발하고도 해당 학생들에겐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부정행위가 합격에 결정적 영향을 줬는지 확인하기 어렵고, 자문에 응한 법무법인들도 합격 취소는 불가능하다고 했다”는 석연찮은 이유였다. 이렇게 첫 관문을 통과한 ‘금수저’들은 신림동 노장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사이 응시자의 반 이상이 합격하는 변호사시험에 어렵지 않게 붙어 법조인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사법시험이냐, 변호사시험이냐 논쟁이 한창이다. 변호사시험을 옹호하는 쪽은 부정입학 등으로 로스쿨이 ‘현대판 음서제(蔭敍制)’라는 비판을 받지만 이를 일반화해서는 안 되며, 엄격하고 투명한 운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귀가 얇은 탓에 나는 시시비비를 가릴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일벌백계(一罰百戒)로 환부를 도려내기는커녕 은근슬쩍 면죄부를 주려는 교육부 덕택에 적어도 어느 한쪽은 이대로는 안 된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정경준 사회부장 news9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