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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고아를 외교관으로 키워준 은혜에 보답”

입력 | 2016-05-04 03:00:00

김석규 前주일대사 모교에 1억… 정미소-양조장 떠돌던 15세 소년
지역 어른-교사 도움으로 꿈 이뤄… 4일 경북 성주고서 장학금 전달




3·1정미소는 경북 성주농업고등학교(현 성주고)로 가는 길목에 있었다. 학생들은 매일 정미소를 지나 등교했다. 벼를 도정하고 쌀가마니를 하루 종일 나르는 열다섯 살 소년은 잠시 허리를 펴고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소년은 6·25전쟁으로 부모를 잃었다. 1951년 서울을 떠나 친척 할아버지가 산다는 경북 성주에 어렵사리 도착했다. 성주중학교는 간신히 졸업할 수 있었지만 고등학교는 사치였다. 하지만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외교관이 됐다.

김석규 전 주일본 대사(80·사진)는 65년 전 일을 회상하며 “과수원, 정미소, 양조장을 전전하던 고아 소년을 세계를 누비는 외교관으로 키운 것은 지역 어른들이었다”고 말했다.

“김 군도 고등학교에 다니면 좋을 텐데….” 자전거로 술을 배달하고 고두밥을 말리고 일꾼들의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성실한 그를 보고 비슷한 또래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안타까워했다. 교사들은 중학교를 졸업한 지 3년이나 지난 그를 다시 성주농고에 다닐 수 있도록 주선했다. 1957년 2월 말 서울대에 합격했지만 학비는커녕 서울 갈 차비도 없어 다시 학업을 포기할 위기에 처했지만 역시 지역 어른들이 도움의 손길을 보냈다. 그가 일하던 성주양조장 고 김세훈 사장을 비롯한 어른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았다.

이런 도움에 힘을 받은 그는 1959년 외무고시에 합격해 파라과이와 러시아의 한국대사를 거쳐 2000년 주일본 대사를 마지막으로 퇴임할 때까지 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외교관으로 활약했다. 김 전 대사는 “6년 동안 산 성주란 마음의 고향이 없었더라면 내 인생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성주 어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소년은 꿈도 펼치지 못하고 한 맺힌 삶을 살았을 것이다.

김 전 대사는 자신이 받았던 도움에 보답하기 위해 다른 소년들에게 희망을 주기로 했다. 모교인 성주고에 장학금 1억 원을 내놓기로 했다. 이런 결심에는 아내의 영향도 컸다. 2013년 세상을 뜬 아내는 10년간 파킨슨병을 앓았다. 그는 긴 시간 곁에서 간병하면서 느낀 ‘노노(老老)간병’의 어려움과 환자 가족 입장에서 본 파킨슨병을 정리해 ‘파킨슨병 아내 곁에서’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때 서로 돕는 삶의 아름다움을 다시 느꼈다.

김 전 대사는 4일 열리는 장학금 전달식에서 학생 400여 명을 격려할 예정이다. 그는 “어려움이 많더라도 노력하는 오늘이 있다면 희망 찬 내일은 반드시 올 것이란 믿음을 학생들에게 주고 싶다”고 말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