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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의 삶, 그 아픔 알기에…”

입력 | 2016-04-28 03:00:00

캐나다 이민 접고 돌아온 윤영미씨, 다문화센터 열고 60명에 교육봉사
건물청소하며 번 돈으로 비용 충당




경기 하남시에서 글로벌다문화센터를 운영하는 윤영미 씨가 ‘이중언어학교 개강식’에서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윤영미 씨 제공

“아임 비지(I‘m busy).”

자꾸만 말을 붙이는 백인 남성에게 바쁘단 말만 남긴 채 부엌으로 숨었다. 그가 쏟아내는 말을 도통 알아듣기 어려웠다. ‘메뉴판에 나온 음식만 고르면 될 것을….’ 밖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영어가 서투른 점을 가지고 친구들과 놀려대는 게 분명했다.

경기 하남시에서 ‘글로벌다문화센터’를 운영하는 윤영미 씨(57·여)는 ‘소수자의 삶’이 어떤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1994년 가족과 함께 떠난 캐나다 이민 생활에서 그가 마주한 현지인들은 보이지 않는 벽을 쌓아 두고 있었다. 언어 장벽과 생활고에 지친 윤 씨는 15년 만에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샌드위치 영어’뿐이었어요. 메뉴판의 샌드위치 종류와 주문받을 때 필요한 문장 몇 가지만 겨우 외워 장사를 했으니까요.”

2008년 다시 돌아온 한국에서 그는 교회의 교실을 빌려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교육봉사를 시작했다. 캐나다에서 느낀 ‘본토인의 벽’을 한국의 소수자들에게는 깨주고 싶었다. 처음엔 아이들이 모이지 않았지만 소문을 듣고 하나둘씩 찾아와 8개월째 접어들자 15명까지 늘었다.

윤 씨는 2013년 1월 경기 하남시에 글로벌다문화센터를 열었다. 평일엔 다문화가정 어머니들에게 한국어를 교육하고 주말에는 60명가량의 다문화가정, 한부모가정 아이들에게 컴퓨터와 언어, 체육 등을 무료로 가르친다. “수업료는 얼마냐”고 묻자 “전부 무료죠”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월세, 선생님들의 월급, 간식비 등을 합해 운영비가 월 200만 원가량 드는데 윤 씨는 이를 전액 자비로 충당한다. 주 3회 센터가 입주한 건물의 청소 일을 하면서 버는 60만 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가족들의 지원으로 부족한 금액을 메우고 있다. “월급을 받지 않겠다”는 선생님들도 큰 도움이 됐다. 윤 씨는 다음 달부터 식당 주방 일까지 하며 운영비를 보탤 예정이다.

토요일(23일) 점심시간 아이들은 체육수업을 하자는 선생님 말에 활짝 웃으며 밖으로 우르르 몰려 나갔다. 중국과 태국, 베트남, 라오스, 한국까지. 센터에 모인 아이들의 국적은 5개가 넘었지만 웃음소리는 하나였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