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태후 마케팅’ 너무하지 말입니다

입력 | 2016-04-27 03:00:00

송중기 어린시절 보낸 마을 관광지化… 태백 세트장 복원 등 과열
지자체 무분별 ‘한류’ 이용 빈축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스타애비뉴’ 포토존에는 걸그룹 소녀시대의 6년 전 활동 사진이 있다. 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너무 ‘오버’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대학생 심원석 씨(26)는 최근 종영한 인기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주연 배우 송중기(31)의 조부모가 살았다는 대전 동구 세정골이 관광명소로 개발된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대전시는 송 씨가 유년 시절을 세정골에서 보냈다는 소문이 나면서 관광객이 몰리자 이곳을 관광지로 개발하겠다고 나섰다.

다른 시민들도 지나치다는 반응을 보였다. 회사원 최모 씨(43·여)는 “‘태후’ 열풍이 사그라들면 20여 가구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에 얼마나 사람들이 몰리겠느냐”며 “전형적인 예산 낭비”라고 비판했다. 대전시 관계자는 “3월 국비 지원을 요청했으나 거부됐다”며 “아직 구체적으로 예산을 책정한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전시 외에도 적지 않은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태후 마케팅’에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치밀한 준비 없이 당장의 유행에 편승하려는 사업 계획이 난무해 오히려 한류(韓流) 열풍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강원 태백시는 철거된 태양의 후예 촬영 세트장을 뒤늦게 복원하겠다며 문화체육관광부에 예산 지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제대로 된 수익성 분석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문체부 관계자는 “현재 태백시의 관광자원을 고려했을 때 시간이 지나면 세트장만을 보려고 태백을 방문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의 무리한 한류 마케팅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서울 강남구는 2012년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자 한류 스타들의 추억이 있는 명소를 관광객에게 소개한다며 청담동 일대에 ‘한류스타 거리’를 조성하고 이를 소개하는 가이드북을 제작했다. 하지만 이 책자는 대부분 광고로 채워져 관광객의 빈축을 사고 있다.

24일 한류스타 거리를 방문한 대만인 관광객 황수훙(黃書虹) 씨(23·여)는 “구청에서 만들었다고 해 믿을 만하겠다 싶었는데 일반 가이드북보다 더 광고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가이드북에는 ‘만다리나덕은 많은 스타에게서 사랑받는 브랜드’, ‘최근 인기를 끄는 제품은 김우빈과 김수현이 드라마에서 선보인 MAILMAN 모델이다’와 같은 광고가 절반에 이른다. 강남구 관계자는 “연예 잡지사에 명소 선정을 맡기는 바람에 가이드북에 대한 구청의 심층적 분석은 부족했다”고 해명했다.

사후 관리 소홀로 외면받는 곳도 있다. 서울 송파구가 올림픽홀에 조성한 ‘스타애비뉴’는 2010년 조성 당시 그대로 방치돼 있다. 포토존에는 걸그룹 ‘소녀시대’의 2010년 활동 모습을 담은 입간판이 6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강원도청은 2006년 강원도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를 소개하는 ‘강원 드라마갤러리’를 개관했지만 시설이 열악하고 홍보가 부족해 현재는 관광객의 발걸음이 끊긴 상태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안목 없는 지자체의 한류 마케팅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채지영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의 유니버설스튜디오나 디즈니랜드처럼 다양한 콘텐츠를 한데 모아 꾸준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강성휘 기자 yol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