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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피해 당했어요” 112신고땐…

입력 | 2016-04-01 03:00:00

경찰, 긴급성 없는 단순 민원-상담엔 출동 안하기로




지난달 30일 오후 10시 50분경 서울 강남경찰서 역삼지구대 이수민 순경(왼쪽)과 정선익 경장이 서울 강남구 논현로의 한 주택가에서 스쿠터를 밀어 옮기고 있다. 두 경찰관은 “집 앞에 서 있는 스쿠터를 치워 달라”는 중년 여성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 이호재 기자 ho@donga.com

“역삼 순마(순찰차) 신고가 있으니 순마 번호 지정하라.”

“12호 순마 지정하겠다.”

지난달 30일 밤 서울 강남경찰서 역삼지구대는 소나기 내리듯 떨어지는 112신고를 처리하느라 바빴다. 지구대 직원들은 오른쪽 귀에 무전기를 대고 눈으로 상황판을 주시하고 있었다. 오후 10시 43분경 지구대에 “집 앞에 서 있는 스쿠터를 치워 달라”는 코드2(비긴급) 출동신고가 떨어졌다. 순찰 중이던 정선익 경장(39)과 이수민 순경(28)은 부리나케 달려 3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신고한 모녀는 “스쿠터 때문에 주차를 할 수 없다”며 빨리 치워 달라고 했다. 여자 2명이 스쿠터를 충분히 밀어서 옮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중년 여성은 “장정이 멀뚱히 서서 뭐하고 있느냐. 빨리 치워 달라”고 팔짱을 끼고 소리쳤다. 경찰이 스쿠터를 미는 중에도 무전기로 출동 지령이 계속 떨어졌다. 정 경장은 “코드2 신고를 처리하다가 중요한 사건에 출동이 늦어지는 일이 다반사”라고 토로했다. 이날 밤 본보 취재진이 동행하는 동안 “밀린 임금을 받아 달라”, “복도에서 쿵쿵 소리가 난다” 등 코드2 신고가 줄을 이었다.

코드2 신고를 처리하느라 코드1(긴급) 현장에 늦게 도착해 20대 여성이 아버지 손에 목숨을 잃을 뻔한 사건도 있었다. 지난해 6월 20일 이모 씨(50)는 경찰에 “이혼 문제로 갈등을 빚은 남편이 술에 취해 가족을 죽인다고 위협하고 있다. 집에 큰딸만 있는데 문을 안 열어 준다”고 다급한 목소리로 신고했다. 남편은 부엌칼로 딸을 위협하고 있었다. 코드1 지령이 떨어졌지만 관할 지구대 순찰차는 불법 주차 신고를 처리하느라 출동하지 못했다. 다른 순찰차는 다른 코드1 가정폭력 신고 사건을 처리 중이었다.

결국 신고 접수 후 9분이 지나 인근 지구대 순찰차가 현장에 도착했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 특공대까지 출동하는 긴박한 순간에 정작 지구대 순찰차가 출동을 못 했다”며 “다행히 남편이 스스로 집밖으로 나오면서 끔찍한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긴박한 사건 현장에 출동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12신고 출동 체계를 개선한다고 31일 밝혔다. 2009년부터 긴급한 정도에 따라 코드1, 코드2, 코드3(비출동)까지 3단계로 구분했지만 현장 도착 시간은 큰 차가 없었다. 경찰청 관계자는 “한정된 인력과 장비를 긴급 신고에 집중하면서 범죄 대응력을 키우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112신고 출동 단계를 코드0, 1(긴급), 코드2, 3(비긴급), 코드4(비출동)까지 5단계로 세분했다. 코드0, 1은 최단 시간 내에 출동한다. 코드0은 “여자가 강제로 차에 납치됐다”와 같은 강력 범죄 현행범 신고로 지방청 112종합상황실에서 상황을 챙기고 필요하면 통화 도중 출동 지시를 내린다. 코드1은 생명과 신체가 위험에 빠졌거나 현행범을 목격했을 경우다. 비긴급 신고인 코드2, 3으로 분류되면 알림 문자를 발송하고 긴급 신고를 처리한 뒤 출동한다. 잠재적 위험이나 범죄 예방 등이 필요한 상황이 코드2에 해당된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금반지가 사라졌다”와 같은 수사 상담이 필요한 코드3은 최대 12시간까지 출동 시간을 연장한다. 민원·상담 신고인 코드4는 해당 기관과 연결해 주기로 했다.

112신고 체계 개선의 성공 여부는 시민 협조에 달려 있다. 112신고 출동 건수는 2011년 711만6764건에서 지난해 1071만9174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이 중 비긴급 출동 신고가 856만8946건으로 79.9%다. 하지만 경찰청이 3월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시민들은 가장 큰 불만으로 현장 지연 도착을 꼽고 5분 이내에 무조건 도착해야 한다고 답했다. 반면 영국에서는 비긴급 신고에 대해 최대 48시간까지 출동 시간을 연장한다. 김항곤 경찰청 생활안전과장은 “신고자의 신고가 비긴급으로 분류돼 경찰 출동이 늦어진다면 이는 진짜 위급한 시민을 구하기 위해서니 이해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박훈상 tigermask@donga.com·이호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