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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국 관전기] 알파고 ‘인간 감각에 없는 수’…변칙공격에 당한 센돌 이세돌

입력 | 2016-03-10 05:45:00


살다보면 눈으로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날 이세돌이 그랬다. 186수만의 흑 불계패. 돌을 거둔 이세돌은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이었다. 충격과 허탈을 넘어 공포마저 서려있는 듯했다.

9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 특별대국실. 오후 1시가 되자 이세돌이 바둑판 앞에 앉았다. 맞은편에는 알파고의 ‘손’을 대신할 딥마인드의 리서치 사이언티스트 아자 황(아마6단) 박사가 자리했다. 돌을 가려 이세돌이 흑을 쥐었다. 이번 5번기는 중국룰을 따른다. 알파고가 중국룰을 기반으로 제작됐기 때문이다. 이세돌은 두 개의 소목, 알파고는 두 개의 화점을 선택했다. 여기까지는 예상했던 대로다. 알파고는 포석에서 화점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장면1>을 보자. 이세돌이 둔 흑1은 변칙이다. 보통이라면 A 정도일 것이다. 흑1은 이세돌의 시험문제다. 이세돌이 아닌 평범한 아마추어가 두었다면 욕을 한 바가지 먹어야할지도 모르는 수. 하지만 천하의 이세돌이 두었다면 사정은 다르다. 인터넷바둑사이트 사이버오로에서 이날 대국을 해설한 홍민표 9단조차 “처음 보는 수”라며 머리를 흔들었다. “무슨 꿍꿍이일까” 고심해야 하는 장면. 그러나 알파고는 얼음처럼 냉정했다. 별 고민도 없이 백2로 우상귀를 걸쳐갔다. 백2가 좋다 나쁘다를 떠나 알파고는 흑1에 흔들리지 않았다. 알파고에게 이세돌의 흑1은 시험문제도 신수도 아닌, 그저 361칸 좌표에서 Q-10 자리의 한 수였을 뿐이다.

이번엔 <장면2>. 초반부터 바둑은 팽팽했다. 이세돌이 초반부터 맹공을 퍼부어 대마를 잡을 것이라는 일부 바둑팬들의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 착각이었는지는 채 30수도 안 돼 발가벗겨졌다. 오히려 포석은 백을 든 알파고의 우세. 하지만 <장면2> 즈음에서는 흑이 분발해 “이세돌이 역전했다”는 의견이 프로기사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던 시점이었다.

알파고의 백1은 이때 뚝 떨어졌다. 이세돌이 장고에 들어갔다. 서울 마장로 한국기원 연구실에 모여 TV를 통해 대국을 관전하던 프로기사들도 놀라긴 마찬가지. 첫 번째는 승부수를 던져야할 타이밍을 정확히 찾은 알파고의 실력에, 두 번째는 백1이 프로의 감각에는 없는 수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알파고가 무리수를 뒀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게 대두됐다.

결과는 어땠을까. 이후 흑은 A, 백은 B, 흑C로 진행됐고, 우변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리고 알파고가 선수를 뽑아 우상귀를 잡았다. 알파고의 ‘프로의 감각에 없는 수’가 통한 것이다. 이후 이세돌은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알파고에게 끌려 다녔다. 최후의 큰 자리인 좌변을 백이 차지하면서 바둑은 사실상 끝났다. 이후 80여 수가 더 진행되었지만 알파고는 단 한 차례도 이세돌에게 역전의 기회를 내주지 않았다.

<장면1> 흑1과 <장면2> 백1은 인간과 기계의 신수, 감각의 대결이었다. 이날 대국은 집 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인간 측’이 과시해 온 직관과 감각의 승부이기도 했던 것이다. 첫 번째 대결에서는 인간이 무참히 패했다. 2국이 열리기까지 남은 시간은 20시간. 이세돌은 과연 달라져서 돌아올 수 있을까.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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