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적 진보의 메아리/김기원추모사업회 엮음/376쪽·1만8000원·창비
진보적 입장에서 현실적 대안을 추구하다 지난해 12월 세상을 뜬 김기원 한국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가 고교 영어 수업 시간에 배웠다며 지난해 3월 자신의 블로그에 인용한 속담이다.
‘복지는 좋지만 세금을 더 내고 싶지는 않다’는 게 보통 사람들의 솔직한 심정일 테다. 그러나 김 교수는 평소 그런 일은 이뤄질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 책은 난무하는 헛된 구호들의 텅 빈 알맹이를 따지고 들며 ‘개혁적 진보’를 설파했던 그의 1주기를 맞아 나온 유고집이다. 2011∼2014년 그가 동명 블로그에 올린 글들을 뽑아 주제별로 엮었다.
그는 참여연대의 재벌 개혁 운동을 통해 재벌 비판을 시작했는가 하면 대기업 노동조합들의 ‘노동귀족적’ 운동에 대해서도 뼈아픈 비판을 했던 인물이다. 자본과 노동 사이의 모순은 그 존재를 인정하면서 첨예해지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찾는 수밖에 없다는 게 지론이었다.
책에 묶인 글은 학술 연구를 목적으로 쓰인 글이 아니라 시사적인 문제들에 관해서 비교적 자유롭게 생각을 정리한 글인지라 그만큼 더 직설적이다. 그는 재벌의 폐해를 바로잡고 복지를 강화해 거대 기업 노동자와 종소기업 노동자의 실질적 생활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했다. 돈만 있으면 안 될 게 없다는 ‘소비자의 편리’도 희생해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갑작스럽게 암 판정을 받은 뒤에도 타계 직전까지 블로그에 글을 올릴 정도로 연구와 집필에 전념했다. 그의 아내는 책 말미 발문에서 “독일에서 돌아오며 ‘이제 겨우 내가 바라는 통일 경제 연구의 방향이 잡혀 가는데…’라고 말하던 목소리가 아직도 들려온다”고 썼다. 책장이 한 장씩 넘어갈 때마다 아쉬움도 쌓인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