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
10여 년 전만 해도 세일은 꽤 매력적인 유혹이었다. 한국에서는 턱없이 비싸거나 수입되지 않는 제품을 사러 홍콩으로 쇼핑여행을 떠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해외 직구는 소비의 시공간 제약을 없애 버렸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대형 유통업체들의 온라인 판매가 늘면서 미국도 반짝 세일 때 몰아서 쇼핑하기보다는 연중 꾸준한 소비로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는 정부가 세일을 주도했다. 통계청이 그제 발표한 10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옷과 가전제품 등 전체 소매 판매가 전달보다 3.1% 늘었다. 57개월 만의 최대 증가 폭이다. 그런데 개운치 않다. 소비와 함께 늘어야 할 생산과 투자는 감소하고, 기업들의 재고만 소폭 줄었다. ‘세일 약발’이 먹혔다고 하기엔 씁쓸한 재고처리 세일이었다.
잘나가던 국내 아웃도어업계는 저성장 시대의 직격탄을 맞았다. 업계에서는 연매출 5000억 원 이상 브랜드를 ‘전국구 브랜드’라고 부르는데, 최근 몇 년간 성장을 견인했던 이들이 고전하고 있다. 매년 120% 생산량을 늘려 넉넉한 마진을 붙여 팔던 상품들은 재고가 됐고, 이를 털기 위한 할인이 연중 계속된다. 세일 피로감이 쌓인 소비자들은 이제 제값 주고 등산복 사는 걸 한심하게 여긴다. 가격표가 신뢰를 잃었다.
소비를 일으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세일을 중단해야 한다. 국내 여성복의 제조원가는 판매가의 10%대인 경우가 많다. 유통회사에 주는 높은 마진과 세일을 감안해 가격을 책정하니 ‘미친 옷값’이 되고 만다. 세일 거품을 빼고 직구 상품들과 승부를 가려야 한다. 애국심 잣대를 들이대선 안 된다. 직구가 늘어나면 당장은 국내 소비재 시장이 잠식되지만 장기적으로는 가격 및 품질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
둘째, 시각적 매력을 발산해야 한다. 스토리텔링만큼 비주얼텔링(Visualtelling)도 중요하다. 해외 패션브랜드들의 인스타그램은 각자가 지향하는 스타일을 이미지로써 한눈에 보여주는 반면 일부 국내 브랜드의 인스타그램은 스타들이 행사장에 온 사진을 올려놓는 수준이다.
당장 고통스럽다고 근시안적으로 세일에 매달려선 안 된다. 소비자는 세일을 마다하지도 않지만 무작정 반기지도 않는다. 소비자는 ‘파블로프의 개’가 아니라 ‘생각하는 갈대’다.
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 kimsunmi@donga.com